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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인 시인 <안개가 잎을 키웠다> 첫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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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잎을 키웠다


유지인




“모나리자의 눈썹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청맹靑盲과니를 위해 안개가 출사표를 던졌다

주파수가 없는 안개 속에선

감각의 촉수를 긴 안테나처럼 뽑고

경계선이 모호한 천을 박음질하는

재봉틀 바늘마냥 무작정 달려 나가야 한다


말의 애드리브나 즉흥 연주의 베리에이션처럼

시를 쓰다 불쑥 튀어나오는 의미도 기억도 생소한

단어를 만날 때 있다 노파심에 사전을 뒤적이면

쓰던 시에 영락없는 퍼즐의 한 조각이다

신명이 오른 문장이 문장을 불러오는 순간이다


안개 속에서 무수히 타종되었던 바람의 문장은

궂은 날 눈만 홀리다 금세 사라지는 여우별이거나

의식의 창을 가린 검은 조각의 매지구름이거나

깨어나 메모장 찾다 다시든 구루잠 속에서

번개처럼 잡아챈 시의 나비날개다

  

안개 장마당에서도 시의 눈속임을 하는

야바위꾼을 만날 수 있다 절벽은 어디에나 있다

그럴 땐 감각의 집어등을 밝히고 허밍,

몰입으로 숨죽인 뱃고동 소리가 더 멀리 간다

아사시한 안개 스토리가 이어지는 곳에서

안개를 먹고 자라난 사물 아이의 눈은

웅숭그레 깊어져있다

 





출판사 서평



유지인의 시들은 독자를 희뿌연 새벽 안개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안개는 불투명한 몸피로 세계를 가리면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인은 모든 것을 희미하게, 비가시적으로 만드는 안개의 그러한 특성이 삶의 전모를 감추어 어쩌면 빈약하고 얄팍할 수 있는 세계에 깊이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유지인에게 이러한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과정은 예술의 다른 이름이자 동시에 삶의 방법론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절벽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럴 땐 감각의 집어등을 밝히고 허밍”을 하듯이, 안개 속에 가려진 희끄무레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웅숭그레”깊다.



여름은 호흡으로 너무 꽉 잡으려하면 목울대를 타고 도망쳐버린다 튀어나가려는 여를 부드러운 ‘ㄹ’이 끌어당기고 ‘ㅡ’가 어르고 구슬려 ‘ㅁ’으로 주저앉게 해야한다 안팎의 열기를 눌러 앉히고 사이좋게 공존케 하는 여름-하고 발음하다 보면 단전 밑이 서늘해지고 치솟는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다

-<입속의 사계> 부분



안개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더듬어 나가는 일은 난해하다. 모호한 말들은 제자리에 내버려 두고 예술에 조응하는 말들만을 건져 올리는 과정은 수많은 비교와 고민의 과정이 따른다. 따라서 시인은 언제나 마음을 대신할 단어를 찾아 애를 태우면서 시가 되지 않는 문장과 씨름하다 지친다. 하지만 유지인의 화자는 절망하지 않는다.오히려 피로와 어려움조차 시의 양식이라는 듯, 마지막까지 시가 될 수 있을 단어를 한 번 더 발음한다. 이러한 풍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를 읽는 우리들 속에도 있던, 언젠가 꿈꿨던 열망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든 오래 품으면 몸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지

밤마다 받아 마신 겹눈을 깨우는 이슬의 문장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말이 있다고

우두커니 있을 때에도 하늘의 창은 열려 있어

통점의 마디를 딛고 생겨나는 마디들

“우리 기억에 불을 붙이자”

거침없는 보폭에 허공도 저만치 물러서고

바람의 측량이 시작되었다

- <견고한 마디> 부분



시집의 해설을 맡은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유지인이 마치“음악의 선율이 흐르듯 유려”하게 단어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떻게 “내면화하는가를 정교하고 아름다운 분석을 통해 묘사”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지인은 사물을 치밀하게 묘사하지만 어렵지 않게, 대상을 정교하게 분석하나 이해보다는 감흥에 가깝게, 말로 그림을 그리듯 시를 전달한다. 시인의 화자를 따라가다 보면 “듣지 않아도 저절로” 시의 노래가 들리는 순간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처럼 “우두커니 있을 때에도”몸에 맞닿는 예술의 빛깔을 마주할 수 있다.


                                                                                                            출처: 알라딘

  


             




시인 프로필


2011년 <너무나 가벼운, 담론>외 4편으로

계간<시안>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2010년-2012년<가정과 건강>

시 해설 및 시 치유에세이 3년간 연재

2023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문학치유 강사

시집 <안개가 잎을 키웠다>2023년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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