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해설 :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심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요 2:12-2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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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몇번이나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는가?
첫번째는 서기 28년 예수님 봉사의 첫 유월절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요 2:13-25)
이때에 ‘나의 아버지 집'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두번째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은 그 일 3년 후 예수님의 지상봉사 중 네번째 유월절을 맞았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마 21:12-17)
이때에 ‘나의 집',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유월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구원함을 기념하는 대절기였다.
유대인이면 누구나 20마일(32킬로메터 - 8십리) 밖에서라도 19세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할 뿐 아니라 이방에 사는 유대인들까지도 유월절에 참석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하여 모인 인파는 225만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3. 유월절의 폐단은 무엇이었는가? 1.
성전세 문제였다.(출 30:12-16)
19세 이상이면 생명의 속전으로 이틀 동안의 임금에 해당하는 돈 반세겔을 내야 했다. 당시 로마, 헬라, 에급, 두로, 시돈, 팔레스틴 등의 은화가 사용되었는데 성전세만은 성전 세겔이나 갈릴리 세겔이라야 했다. 일반 세겔은 이방인의 것이어서 깨끗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리가 된 것은 하루 노임에 해당하는 8펜스의 주화를 사야만 했다.
‘돈을 바꾸는 일은 사기와 부정취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굴욕적인 거래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제사장들의 수입의 근거가 되었다.’(시대의 소망 154)
성전 마당에서 제물을 파는 문제였다.
멀리서부터 제물을 갖고 올 수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돈을 주고 사야만 했다. 값이 부르는 대로 값이었으며 거기다가 짐승의 심사비도로 2펜스를 내야 했고 가난한 자들이 사는 비들기도 9펜스 밖에 안될 것인대도 15펜스를 받았다. 그러나 부득불 제사는 드려야 하기 때문에 값이 비싸지만 살 수 밖에 없는 부조리가 유행했다.
가난한 순례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아져서 유월절의 참뜻은 외면되고 있었다.
제사장과 관원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부정축재를 했다.
‘소란스러운 가축시장, 노한 언쟁소리,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 가축들이 우는 소리, 양들과 비들기 우는 소리, 성전은 성전의 내부까지 소동하는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시대의 소망 1권 200)
4. 예수님께서 성전을 어떻게 정결하게 하셨는가?
요한복음 2:14-16절의 기사는 4복음서에 나타난다.(시대의 소망 1권 203-204 참조) ‘저들은 그리스도를 우러러 보자 인간의 두루마기를 통하여 신성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시대의 소망 1권 203)
5. 성전을 정결케 하심에서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접근하는 일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성전은 거룩하다. 그러나 누구나 성전을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이것이 성전을 두신 목적이었다. 그런데 인도자가 되어야 할 제사장이나 관원들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 멍에를 만들었다. 그러나 많은 무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는가!
타락을 질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질책하셨다. 어떤이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해 크게 실망하고 원망하고 타락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이 아직도 여전히 통찰하시고 계심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때때로 예수님 앞서 나아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니다.
‘저들은 성전에 관계가 있는 의식의 이행에는 매우 엄격했으나 저들이 그렇게 치밀하게 한 것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이 의식의 원래의 목적에서 저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갔는지를 거의 깨닫지 못했다.’(상동 1권 200)
오늘날도 교회 안으로 들어온 세속주의가 문제이다. 제사장들은 함구할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해야 한다. 신구약 사이의 계시없는 밤은 어두울대로 어두워져서 예수님의 이 선언과 함께 동이 터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롬 13:12) 빛의 갑옷을 입자!
가난한 자를 없신 여기거나 학대하지 말 것이다.
‘유월절이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울어야 했고 허탈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목적이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슬픈 자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후 가난했던 자들이 “나를 축복하소서!”하고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었을 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상동 1권 209 참조)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모독행위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출 25:8-9) 시은소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지도자들의 정신이 제사에 있지 않고 제밥에 있었다. 성전은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이 성전을 헐라 3일만에 지으리라'하심은 자신과 성전을 동일시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성전을 헐라 하심은 유대인 성전과 예배의식이 파괴될 것과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었다.’(상동 1권 211 참조)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터득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인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성소가 있도록 해야 한다.(고전 3:16-17 참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엡 2:21-22) 되어야 한다. ‘억지로 그리스도께서는 들어가기를 원하시지 않는다’(시대의 소망 1. 206) 문을 열면 들어오시겠다고 기다리신다.(계 3:20 참조)
목사의 설교를 열심히 받아쓴 성도에게 가까이 다가선 목사는 그의 진정성이 있는 예배의 태도에 대하여 기쁨의 미소를 지어보였다한다. 그러나 그 성도의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 ‘예배시간에 계산해보니 지난 주일 장사는 손해봤다!’고 했다.(요 4:23-24 참조) 우리 마음의 성전은 ‘신령과 진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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