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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금) -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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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눅 23:33).

십자가라니? 로마 제국에서 가장 억센 사람에게조차 십자가는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잔인한 사형 방법인 십자가 형벌에는 공개적인 수치와 서서히 진행되는 신체적 고문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마르틴 헹겔이 말했듯이 십자가의 죽음은 “다른 죽음과 같지 않고 대단히 모욕적”입니다. 문자 그대로 ‘추잡한’ 죽음입니다. “십자가 죽음은 형 집행자의 변덕과 폭력이 극에 달하는 형벌입니다.”


공개적인 수모는 처형 장소까지 십자가 들보를 지고 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폭력적이고 저열한 인간 욕망을 충족할 만한 TV 프로나 영화가 없었던 그 시대에는, 십자가야말로 따분하고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 동네 최고의 구경거리였습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는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묶여 꼼짝할 수 없었고 수치를 가리지 못하고 구경꾼들에게 조롱과 경멸을 받아야 했습니다. 형장에 도착하면 병사들은 십자가 들보를 기둥에 고정시킵니다. 그다음 죄수의 팔다리를 펴서 부드러운 살과 단단한 뼈에 못을 박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들어서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살이 찢어지도록 ‘쿵’ 하고 처박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타는 듯한 팔레스타인의 햇볕도 추위와 벌레의 공격도 피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급소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탈진, 근육 경련, 갈증을 겪으면서 여러 날이 지나서 죽기도 합니다. 로마에서 십자가는 범죄자로 판명된 노예와 외국인에게 적용되었고 어리석은 최후를 맞은 반역자의 본보기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을 이스라엘에서 제외된 자, 하나님 율법의 저주를 받은 자, 하나님과 유대 백성 간의 언약에서 배척된 자로 여겼습니다. 한마디로 유대인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정복자이며 임금이었지 절대로 고통 받는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를 통틀어 예수님만 유일하게 그런 죽음을 자청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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