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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월) - 절망으로 어두어진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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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13~21).

누가는 신약 성경 최고의 이야기꾼일 것입니다. 탕자(눅 15장), 특히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오늘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누가복음에만 소개된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누가의 글솜씨 때문만은 아닙니다. 메시지 자체도 중요합니다. 마음이 심란한 이들에게 필요한 기별입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가 겪은 혼란은 여러 면에서 놀랍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나타날 때마다 다른 제자들은 늘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모습이 몰라보게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가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저도 얼마 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안식일학교 시간에 다른 사람을 기다리다가 친구 한 명이 찾아왔는데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정 인물에게 마음을 쏟고 있느라 낯익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사람이 그렇게 멍청해질 수도 있는가 싶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대하기에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구원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출하는 대신 오히려 로마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하고 마음이 심란하여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앞에 계신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용기를 얻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혼란과 고독에 직면합니다. 상실감에 빠져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아내지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눈이 어두워진 것일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야만 하나님의 섭리로 그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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