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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목) - 부활 그리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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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6~8).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의 축입니다. 그 사건은 제자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라는 기쁜 소식을 듣는 일처럼 제자들에게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천사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라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즉각적인 은혜가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마가복음에 언급된 제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막 14:50)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했고 이후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습니다(71, 72절).
예수님을 배신한 이후 베드로는 절망스럽게 탄식하면서 사흘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예수님이 실족한 베드로에게 특별 초청을 보냈다고 언급한 사복음서 기자는 마가뿐입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도움을 준 장본인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다른 기자들은 ‘그리고 베드로에게’를 생략할 수 있어도 베드로에게는 아닙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라는 이 두 낱말로 인해 베드로는 절망을 떨쳐내고 다시 희망을 얻은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이 실족한 제자에게 자신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것입니다.
은혜란 이런 것입니다. 베드로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신 게 아니라 그가 감히 받을 수 없는 것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바로 용서와 사도직의 회복이었습니다. 제임스 에드워드는 말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베푸는 은혜라는 말 속에 배신자 베드로도 포함될 수 있다면, 실패한 동료도 거기 포함된다고 믿고 안심해도 좋습니다.” 거기에는 성직자도 해당합니다.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잊지 맙시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어떤 너그러운 상상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더 쉽게 말해 만약 우리가 베드로의 처지에 놓인다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대해 달라고 예수님께 감히 기대할 수 있을까요?
‘자비로운 주 하나님(Amazing Grace)’은 제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찬미입니다. 허락만 된다면 저의 모든 설교 끝부분에, 저의 모든 강의 마지막 부분에, 저의 모든 기도 끝에 그리고 제가 사는 모든 날 동안 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라는 문구에서 베드로 대신 여러분의 이름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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