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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일) - 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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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 더군다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저와 함께 데려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살전 4:14, 필자의 번역).

14절이 “왜냐하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13절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13절에서 그리스도인은 죽음 앞에서 소망 없는 자와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과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저와 함께 데려가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음의 두 가지를 근거로 그리스도인에게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셨다. 둘째,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것이 일차적인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약속된 부활에 대한 소망의 넓이와 깊이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가르침이야말로 복음의 정수입니다. 그분은 죽으셨다 부활하셔서 우리와 승리를 나누셨습니다(고전 15:1~3, 22, 23).
오늘의 성경절을 기존 번역 대신 제가 직접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참고한 역본은 대부분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개역개정)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펴야 할 대목은 ‘데려오신다(bring)’입니다. 저는 이것을 ‘데려가신다(take)’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어는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두 번역 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두 번역의 의미는 상당히 다릅니다.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 사람을 예수께서 지상으로 ‘데려오시’든지 재림의 때에 그분께서 부활시킨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시’든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번역가 대부분이 그리스어 ‘아고(ag?)’를 ‘데려오다’로 해석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번역에는 죽은 사람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무덤에 잠들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신학과 대립하는 저의 번역만이 올바른 것일까요? 다행히 문맥에 그 답이 있습니다. 16절에서는 부활의 날에 깨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모두 지상의 무덤에서 잠들어(죽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종교개혁의 원조 마르틴 루터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오셔서 무덤의 문을 두드리고 ‘마르틴 박사, 일어나게.’라고 말하실 때까지 우리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곧 일어나 그분과 함께 영원히 행복을 누릴 것이다.”

아버지, “복스러운 소망”에 깃든 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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