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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일) - 갈보리에서 교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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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위 성경절에서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죄에 대해 번뇌하는 한 수도승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루터는 그 수도승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배우시오. 그에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시오. ‘주 예수께서 나의 의(義), 저는 주님의 죄입니다. 주께서 제 것을 취하셨고 그 대신 주님의 것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아닌 것을 취하셨고 제가 아닌 것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루터에게 그것은 ‘위대한 교환’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그 음산했던 날,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의 제자들은 그 길을 보지 못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따라온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의 수치스러운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절정도 아니었고 진리를 위한 순교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주장이 거절당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십자가에서 그들은 그분에게 걸었던 희망을 확인할 수 없었다. …도리어 희망이 무너졌다.” 예수님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정확한 형태를 수차례나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셨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행복한 삶과 자기 목표로 가득한 비전 속에 하나님의 길이 제시될 때 인간은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엉뚱한 말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때야말로 우리가 두 눈을 번쩍 뜨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읽어 내야 할 순간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은 제자들의 일생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었지만 그 상태가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곧 십자가를 희망의 절정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예컨대 바울은 십자가가 구원의 닻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영생과 주님의 의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고전 15:1, 3)셨다는 점을 들어 ‘복음’을 일부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단번에” 죽으셨고 “한 번의 제사로” 구속의 계획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고 확증합니다(히 10:10, 14). 예수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롬 3:23~25).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위대한 교환’을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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