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안) - 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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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율법책에 적혀 있는 것을 다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갈3:10에 인용된 신 27:26, 쉬운성경). 율법의 역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이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능은 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나쁜 소식은 “죄의 삯이 사망”(롬 6:23)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나쁜 소식들입니다. 좋은 소식(문자적으로 ‘복음’)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우리 각 사람을 위해 그 저주를 다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그토록 무서워했던 것은 십자가 위에서 겪게 되는 육체적 형벌이나 공중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세상의 모든 죄를 감당해야 하는 데 따르는 정신적 고뇌 때문이었습니다. <시대의 소망>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예수님의 고뇌에 대해 우리의 이해를 돕습니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그분은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구주께로부터 당신의 얼굴을 돌리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사탄은 맹렬한 유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이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 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이신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인식이었다”(753쪽).
예수님에게 십자가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대단히 빈약하게 이해할 뿐입니다. 지구 역사의 비극은 대부분의 사람이 십자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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