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월) - 빌라도의 재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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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 27:15~23).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들의 기소 내용처럼 혁명분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교활하게도 예수님에 대해 혐의를 날조하고 있는 것도 분명히 알았습니다. 빌라도처럼 본질적으로 악한 사람도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일말의 염치는 있는 법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무죄한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으로는 자신의 과거를 감안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 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죄인 한 사람을 풀어 주는 유월절의 관습을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백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빌라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개선했을 때 군중은 그에게 몰려들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는 길 위에 겉옷을 폈으며 또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제시한 또 하나의 선택은 “민란 중에 사람을 죽인”(막 15:7) 폭도 바나바였습니다. 여기서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빌라도가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로마로부터 자유를 열망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오히려 특별한 호감을 살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군중이 바나바를 선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거기 모인 군중은 예수님을 깊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불러 모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선택했습니다. 바나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군중은 그들이 원하는 ‘아버지의 아들’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오늘날 우리의 선택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나는 누구의 아들을 원하는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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