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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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The Christian Life
저자: 라인더 브륀스마
역자: 윤재성
총 론
대반격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하나인 피에르 라플라스(Pierre Laplace)는 행성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그것을 천체역학이라 불렀으며, 나폴레옹 황제에게도 그 책을 한 권 증정하였다. 누군가 미리 나폴레옹에게 말하기를, 그 책에는 전혀 하나님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그 책을 받아들고 이렇게 말했다. “라플라스,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주의 체계에 관한 이 큰 책을 쓰면서 그것을 지으신 창조자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라플라스는 대담하게 말했다. “제가 증명하고자 하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논리와 이성, 그리고 과학이 모든 진리의 기초를 이룬다고 믿었던 소위 ‘근대 사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사상에 따르면 모든 현상은 공식과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과학적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논리와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에 대한 대반격이 근년에 일어났다. 지금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차가운 이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상을 믿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수학 공식이나 실험관이나 과학의 법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반격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비롯해서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작용이 그렇듯이 이러한 반발의 어떤 부분은 그 도를 넘어서 교리적 진리를 밀쳐 내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향도 있다. 사람들은 가르침이나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경험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온전한 진리가 아니다.
과거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약속을 믿어야 할 강력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면, 이제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신뢰와 헌신의 모험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 둘 다 나쁜 것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예수께서는 진리가 우리의 삶에 구체적이면서 또한 실제적인 결과를 나타낼 것이라(요 8:32)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진리는 단지 교리의 지식이나 성경절이 아니라, 신자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진리는 영적인 삶과 일상적인 삶에서 만나는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지침을 준다. 우리의 신앙에는 아무도 거부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실제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결코 올바른 성경적인 가르침의 중요성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이번 기에 우리는 믿음의 양 측면, 즉 교리와 경험을 함께 살펴보기 원한다. 이번 기 교과를 공부하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적인 13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매주 교과를 통하여 우리 신앙의 다양한 요소에 관하여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이 매일의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배우기를 원한다. 이번 기가 끝나게 될 때 우리는 이 주제들을 더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도 더 풍성함을 맛보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매 과의 공부는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관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우리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분이시다. 비록 13개의 다른 주제들을 공부할지라도 우리는 오직 한 분, 곧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한 분(행 17:28)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클리퍼드 골드스틴
<저자 소개>
라인더 브륀스마(Reinder Bruinsma)는 네덜란드에서 출생하여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였다. 그는 약 20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중에는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들도 있다. 이 교과를 집필할 당시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네덜란드 연합회장으로 봉직하고 있었다.
제1과 사랑
4월 4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7분)
도입)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눈썹 한 번 치켜 올리시면 가시 면류관을 엮는 군병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으셨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셔서 행하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별들로 구슬치기를 하실 수 있으신 분이 자신의 무한성을 포기하신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성육신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알고 싶은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친구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달아날 때도 그분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다는 사실? 아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남녀 죄인들의 온갖 죄를 대신 뒤집어 쓰시면서도 주님은 자기변호를 거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천국의 법정에 무수한 유죄 판결이 울려 퍼지고 빛의 창조자가 죄인들이 가득한 밤의 냉기 속에 버려졌을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무덤에서 사흘을 보내신 후 환한 웃음으로 부활의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시며, 초라한 루시퍼에게 “그것이 제일 센 주먹이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심지어 그 부분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도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중에서 / 맥스 루케이도
핵심본문: 고전 13:13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동정어린 무아적인 사랑을 비교해 본다.
행하기: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삶에 나타나게 한다.
교과 개요
I. 필요로 하는 사랑(창 1:26)
A. 창세기 1:26의 기별은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의 본성이 그들을 통해 반사되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서 그분의 사랑의 속성을 우리의 삶을 통해 반사해야 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B.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
II. 경험하는 사랑(요일 3장)
A.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다. 창조, 안식일의 선물, 구원의 계획, 예언의 신 등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확증해 준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나누어 보라.
B. 영생의 선물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다른 예들은 무엇인가?
III. 반사하는 사랑(마 22:35-40)
A.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을 잘 나타내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인가?
요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게 되면, 이 사랑은 우리의 삶에 나타날 것이다.
기억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연구 범위: 사 53장, 마 22:37-39, 고전 13장, 요일 3장, 4장.
중심 사상: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그 절정을 이룬 곳은 바로 십자가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에 반응할 수 있다.
안식일 오후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 개념들을 다루는 이번 기 교과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 등 그리스도교의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다 사랑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고전 13:2)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약 5세기 전에 헬라의 철학자 소포클레스(Sophocles)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하나의 단어,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지만, 이 헬라의 현인은 우리 구주에 의해 선포되고 모본으로 보여진 사랑의 깊이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께서 보이시고 행하신 모든 일은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다. 비록 우리가 이 사랑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는 인간의 얕고 순간적인 사랑, 때때로 이기심과 탐욕이 섞여 있는 그런 사랑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단지 사랑을 지니고 계시거나 보여 주기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일요일(3월 29일)
삶의 본질인 사랑(마 22:37-39)
도입)
사랑이란 육체를 통한 부부의 사랑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의 성품 가운데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고귀한 선물이 있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본체를 잃어버렸다. 마치 주신 사랑 위에 새로 페인트칠을 해서 새로 만든 인조사랑으로 변해버렸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성품 속에서도 가장 노른자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은 분석할 수도 없고 파헤쳐 볼 수도 없다. 성경을 진정으로 읽고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성경은 개별적인 66권으로 이루어 졌고, 세 개의 대륙에서, 세 개의 언어로, 1500여년에 걸쳐, 그리고 40명 이상의 저자에 (각기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았던) 의해 기록되었지만,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도 없이 잘 통합되어 있다. 성경은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이 죄인들을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어떻게 다루시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편지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위한, 특히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인간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도록 호소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대우를 받기에 합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고 마셔야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곧 죽고 만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양식을 먹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다. 우리는 부모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사랑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받아야 하는 만큼 또한 사랑을 나눌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참된 사랑은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 분은 창조주이시다.(참조 창 1:26, 요 3:16)
1.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삶에 있어서 사랑은 얼마나 중요합니까?(마 22:37-39, 고전 13:1-3, 요일 3:14)
답: ▶ 1문 길잡이: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므로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도 그분의 사랑의 속성을 닮아야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사랑보다 앞선다. 참된 사랑은 “거룩한 원칙이며 항구적인 능력이다. 성별되지 않은 마음은 이 사랑을 일으키거나 산출할 수 없다.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마음속에만 이 사랑이 나타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거룩한 은혜로 새롭게 된 마음속에서 사랑은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이다.”(사도행적, 551)
영국의 저명한 작가인 루이스(C. S. Lewis)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구별하기 위해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지만, 우리가 동료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필요로 하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에너지인 사랑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에 굶주리신 분이 아니시며, 다만 주고자 하는 열망으로 충만해 계신다.”(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1998년, 121).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참으로 그분의 사랑을 닮은 사랑을 나눠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창조주께 대하여 사랑과 충성심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 그러므로 그는 자유롭게 사랑하고 순종하거나, 혹은 불신하고 불순종할 수 있었다. … 왜냐하면 오직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서만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 자체인 사랑의 원칙(요일 4:8)을 충분하게 나타내 보일 수 있는 품성을 계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형상의 최고 표현, 곧 온 영과 혼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었다(마 22:36-40).”(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20)
교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적인 사랑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받고자 하는 대신 그것을 베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부가적용)
하나님은 사랑이시란 말은 하나님은 모든 사랑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이다. 강물에는 그 근원이 있듯이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끝없이 넓은 호수와도 같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그 호수에서 공급되는 수도관의 물줄기 같은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주님의 그 한없이 넓은 사랑의 물을 퍼서 너희끼리 서로 마시라는 의미가 되겠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따르지 않는 한없이 넓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이 이 세상에 있는데 그것을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것은 사49:15절에서 '여인이 어찌 그 젖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그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함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핵심적인 노른자위의 생명을 낳는 눈과 같다.
월요일(3월 30일)
구약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렘 31:3)
도입)
“구약은 분노의 하나님, 신약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셨다. 즉 하나님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그리고 역사 안에서 그 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통해 점차적으로 자신을 나타내 오셨다. 이런 사실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동시에 잘 읽어나가면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 모두가 구약과 신약에 두루 걸쳐 나타난다는 것이다. 구약 전반을 통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를 볼 수 있는데, 신약에서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1:18). 그리고 또 신약을 잠깐만 훓어 보더라도, 예수께서 천국보다 지옥을 더 많이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신약에서 보여진 모습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성경의 한 특정한 부분에서 하나님 성품의 한 단면이 다른 면보다 더 많이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불변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신약에만 나타나 있고, ‘구약의 하나님’은 공의와 진노의 하나님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깊이 연구해 보면, 하나님은 그런 이중인격을 지닌 분이 아니심을 알 수 있다. 신약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구약시대의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약 1:17). 그분은 진노의 하나님 혹은 공의의 하나님에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서서히 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다음의 말씀은 구약시대의 하나님 백성에게 항상 적용된 말씀이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노라.(렘 31:3)
1.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었다는 중요한 증거들을 다음 목록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고 구약에서 그분의 사랑이 나타났던 또 다른 분명한 증거들을 추가해 보십시오.
1)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창 1:26-31, 2:21-25)
2)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심(창 3:15, 22:8, 사 53장)
3) 안식일을 선물로 주심(출 31:12-17)
4) 선지자를 통해 계속적으로 은사를 허락하심(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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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1문 길잡이: 구약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잘 나타나 있다. 죄를 용서하심(출 34:7, 시 51:1-15),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심(신 32:10, 시 37:28, 사 43:1-2), 메시야의 출현에 대한 자세한 예언을 주심(미 5:2, 단 9:25-27, 사 7:14) 등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비록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구약에는 분명히 전쟁과 피흘림에 관한 이야기와 진술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 백성을 당신께로 이끄시고, 심지어 그들이 반복해서 그분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에도 그들을 떠나지 않으신 언약의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헤세드와 아가페
“'헤세드'(chesed, 사랑 혹은 인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영어로 적절하게 번역하기에 가장 어려운 히브리어다. 그 단어는 히브리 구약에 245회 나타난다. … '헤세드'는 첫째로 개인들 간의 관계를, 둘째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헤세드'의 예들은 많다. 일반적으로 헤세드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과 그분의 태도, 그분의 교제들, 그분의 관계들을 적용했을 때와, 어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람과 그들의 태도, 그들의 교제들, 그들의 관계들을 적용했을 때를 묘사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 오히려 구약 기자들은 신약 기자들이 '아가페'(agape,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를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이 '헤세드'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시편 36)
교훈: 성경 전체를 주의 깊이 연구해 보면 구약의 하나님도 신약의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분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
부가적용)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시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여호와)로 선포하시면서 야훼 하나님은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계시하셨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헤세드)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34:16). 이것은 구약에서 야훼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로 그 첫 서술어가 자비롭고로 나타나는 그 단어는 어머니의 자궁(子宮)과 관련된 파생어로 하나님의 사랑은 비유컨대 어머니가 자궁에 잉태된 생명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보호하는 내용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인자(또는 인애, 헤세드는 그 사랑의 성실성 내지 충실함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모세는 이러한 야훼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으시는 근거라고 밝혔다.(신7:7∼; 요일:10; 롬:8 참조.) 이제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우고 상기 시켰으며 그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깨우쳤고 특히 호세아는 하나님을 부모와 남편의 비유로서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화요일(3월 31일)
신약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요 3:16)
도입)
사도 요한은 사랑의 출발지로서의 대상을 하나님과 연결시키고 있다. 요일 4: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니니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전혀 존재치 않는다. 더군다나 원수지간으로 먼 거리에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할 만한 사랑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랑이란 오직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에 그 바탕을 둔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 요한은 요일 4:7절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세상에 오셨는가? 그분은 왜 고난을 받으셔야 했으며,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실 필요가 있었는가? 그분은 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흠 없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시는가? 다른 방법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왜 죄의 문제를 완전히 다루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답할 입장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지혜로써 인간이 죄의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의 계획을 고안하셨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완전한 율법에 대해 반역한 자들을 묵과하실 수 없으셨으며,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피조물들이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멸망해 가는 것을 그냥 바라보실 수만은 없으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악을 묵인하실 수 없는 그분의 완전한 순결이다. 한편 그분의 사랑은 죄인을 감싸 안으시는 풍성한 자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부정과 불경으로부터 분리되게 하며, 그분의 사랑은 부정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그들과 하나 되게 한다. … 하나님의 진노는 죄가 지속되는 동안으로 한정되지만,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도널드, G. 블로쉬,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 지혜, 성결, 사랑, 1995년, 140-143)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다음의 신약 구절들 외에 또 다른 목록을 추가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주심(요 3:16)
2) 하나님의 아들께서 스스로를 내어주심(빌 2:5-8)
3)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요 14:15-18, 행 2:1-4)
4) 영적인 은사를 허락하심(고전 12:1-11, 엡 4:11-13)
5) 확실한 구원을 베풀어 주심(요일 3:1-3)
6) 사랑 안에 거하는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심(벧후 3:13)
7) 신약에는 또한 영생에 이르는 길(요 14:6, 행 4:12)이 제시되었고, 부활의 소망(요 11:25, 살전 4:16-17)이 주어져 있다.
2. 신약에 나타난 사랑의 하나님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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