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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선지자들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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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2.11 23:20 조회수 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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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선지자들의 권위

2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7분)


도입)

필래드라스는 “배운 사람은 항상 자기 속에 재산이 있다”고 말을 했다. 안식일학교 교사들이 과정공부를 위해 많은 분량의 준비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돈이 아닌 지적이고 영적인 재산을 쌓아가기 위함일 것이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두 번 배운다고 하였는데 교사가 된다는 것은 과정공부를 두 번하게 되는 셈이다.

고고학적 증거나 성경의 자료들(왕하 10:19)을 통해보면 고대 세계에서 선지자들이 여러 방면에 걸쳐 두루 활약하였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지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곧장 미래를 예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머리속에 떠올린다. 물론 성경의 선지자들은 종종 장래 일을 예고하였다. 하지만 그런 예고가 선지자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선지자"란 낱말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신의 뜻을 사람에게 해석하는 신의 대변인을 가리킨다. 구약에는 선지자를 일컫는 용어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님의 사람"(왕상 17:18,24)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왕하 4:9)이나, "선지자"(왕상 13:11)나, "신에 감동하는 자"(호 9:7)나, "선견자"(삼상 9:9-11) 등이 있다. "선견자"란 말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식별할 수 있는 자를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지자란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선지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할 권위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기록하여 남기기도 했다. 선지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억절: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0-21)


연구범위: 출 4:10-16, 삼상 12:1-14, 왕하 22:10-13, 렘 36:22-31, 막 1:21-27, 행 16:25-34.


학습 포인트: 모세는 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기를 주저했는가? 비록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어떤 권위를 가졌는가? 정경(正經)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그 외의 선지자들 사이에는 어떤 권위의 차이가 있는가?


안식일 오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간에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 있다. 물론 선지자들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선지자들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내신 분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엄숙한 일이다. 만약 누군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노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창조주의 대언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결코 작은 책무가 아닌 것이다. 종종 회사의 상사나 대통령 혹은 수상을 대신해서 말하도록 권한을 위임받는 경우가 있지만, 주님을 대신하여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겠는가? 불행하게도, 성경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기별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심해야겠는가?


일요일(2월 15일)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출 4:10-16)


도입)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 로에, 호제라고 한다. 후자 두 단어의 의미는 보는자라고 한다. 나비는 어원학적으로 불분명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변자/대언자라고 한다. 로에 호제의 일차적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보는 사람을 지칭 한다. 그러므로 이상이나 환상을 보고 해석하는 자, 통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면도 있지만 실제적 말을 들어서 그 말 그대로 선포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가라사대 등등의 말이 구약에 많이 나온다. (신명기 18:18)“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인류에게 전달하는 대변자/대언자가 된다. 점쟁이들과 같은 예언보다는 더 광의에 속한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선지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이상과 환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성실한 선지자가 되거나 악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1. 출애굽기 4:10-16에서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대화를 읽으십시오.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대화에서 선지자는 어떻게 부르심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까?

답: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같이” 되고(참조 출 4:16),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요 대변인인 선지자들 간의 밀접한 관계를 정확히 나타내준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대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 모세는 선지자가 되기를 꺼리고 있었다.

엘렌 G. 화잇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처음에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했었다. “첫 이상을 본 지 약 1주일 후에 본 두 번째 이상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들을 보여 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활동은 큰 반대를 받을 것이며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는 듯할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하기에 충분할 것임을 보여 주셨다.

이상에서 깨어난 후 나는 심히 괴로웠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나아가 진리를 전하는 것이 나의 의무로 이상 중에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건강 상태는 너무도 나빠서 끊임없이 육신적인 괴로움에 시달렸으며, 모든 상황으로 보아 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였다.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으며, 작고 나약하며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천성적으로 수줍고 소심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여러 날 동안 나는, 이 짐을 내게서 옮겨 그것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달라고 깊은 밤중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임무에 대한 빛은 변하지 않고 천사의 음성만이 계속 내 귀에 쟁쟁하였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라.’”(엘렌 G. 화잇의 자서전, 69)


교훈: 선지자의 권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의 기별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매우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가적용)

엘렌 G. 화잇이 하나님의 기별의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기 전에 먼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이 받은 빛을 거절하고 불순종 하였다. 윌리암 포이와 헤이즌 포스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윌리암 포이는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침례교회 교인이었다. 1842년 두 번의 계시를 받았다. 1월 18일 2시간 30분 동안, 2월 4일에는 12시간 30분에 걸쳐서 계시를 보았다. 그는 가족의 생활비 걱정으로 ...잠시 공중사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는 1844년에도 세 번째 계시를 받지만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1844년 10월 22일 대실망 직전에 재림운동에 참여한 청년이었던 헤이즌 포스에게 계시를 주셨다. 마음이 교만하고 겁이 많은 포스는 계시를 말하면 비난 받을까 두려워서 머뭇거렸다. 대실망을 매우 쓰라리게 생각하고 속임을 당하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계시를 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다시 새로운 계시가 임했는데 만약 계시를 거절하면 그가 받을 영적 은사를 타인에게 옮길 것이라는 계시였다. 그래도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3번째 계시를 통하여 이제는 그 책임에서 놓였으며 이 기별은 가장 연약한 자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었다. 헤이즌 포스는 1845년 초에 엘렌 하몬이 첫 계시를 말하는 것을 듣고는 엘렌 하몬에게 자기의 지난 경험을 자세히 말하여 이런 격려를 한다. “나는 그 계시가 나에게서 취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것을 믿습니다. 나는 잃어버린바 된 사람입니다. 그대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대의 사업에 신실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받을 뻔한 면류관을 그대는 받을 것입니다.” 엘렌 하몬은 겸비하고, 유순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다. 3년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고 신체는 몹시 허약하였고 볼품없는 여인이었다. 17세의 연약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몬 양은 87세까지 70여 년간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로서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였다.


월요일(2월 16일)

성육신하신 말씀의 권위(마 28:18)


(도입)

타락한 죄인들의 죽을 운명의 불행한 처지에서 해방하시기 위해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독생 자를 보내셔야만 했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나님과 동등하게 영원한 하나님이신 독생자가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입고 죽을 인간이 되어 죽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황송하신 처분으로 죄인들을 해방하시고자 신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선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존엄성에 합당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만사를 동등하게 지배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에게 다른 가능한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불행을 치유하시는 데 더 합당한 방법이 달리 없었고 또 있을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죽을 운명인 처지 때문에 낙심하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소망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마음을 해방하여 소망을 일으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며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밝히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위대한 증명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하신 일보다 더 분명하고 더 빛나는 것은 무엇인가? 변함없이 선하시며 어디까지나 스스로 존재하시는 그는 자기의 본성을 상함 없이 자기와 다른 우리의 본성을 우리를 위해서 취하시며 자기를 낮추어 우리와 짝을 지어 아무 허물도 없으시면서 우리의 고난을 지시며 지금은 믿는 우리에게 아무 값없이 선물을 풍부히 주신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전에 낙망했던 일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선한 공로가 없으면서도 앞장선 것은 우리의 악한 공적뿐이면서도 우리는 소망을 품고 있다.


마태복음 21:23에,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분께 이렇게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는 랍비들이 잘 사용하는 방식인 ‘되묻는 질문’(counter question)으로 대답하셨다.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25절, 참조 23-27절). 랍비들의 논쟁에서 되묻는 질문은 본 질문에 대한 답을 암시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답하지 않자, 그분께서도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약 요한의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분의 권위에 대해서도 논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마 7:28-29, 막 1:21-27, 눅 8:22-25, 9:1, 요 5:25-27)

답:

최종적인 권위는 우리의 창조주(요 1:3)요 구속주(롬 3:24)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그분은 재판장이신 동시에 각 사람이 심판받게 될 절대적 표준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그분이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7:29)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위를 보게 된다. 그분은 죄를 용서하셨고(막 2:10), 귀신을 쫓아내셨으며(막 3:15), 사람들의 마음을 심판할 권세가 있음을 주장하셨고(요 2:24-25), 또한 영생을 주셨다(요 10:2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사하신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것이었다(요 17:2).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포함하여,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항상 하늘 아버지께 의존함으로, 아버지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요 5:19). 그와 동시에 그분은 독자적인 권세를 가지셨다(마 28:18).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었으며(막 6:7),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다.(요 5:27)


교훈: 예수께서는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또한 당신 자신이 독자적으로 가지신 권세이다.


부가적용)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위대한 역사적 인물, 이웃을 위해 죽은 성인 혹은 기독교의 창시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이는 비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그리스도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피조된 분이 아니시다. 탄생시에나 부활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다.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우리에게 증명이 된 셈이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던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오신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몸을 가지셨고 인간의 영혼을 가지셨다. 실제로 우리와 똑 같이 오셨으되 죄는 없으신 몸으로 오신 것이다. 몸이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 아니다. 실제 사람이 아니며 몸이 없는데, 다만 몸처럼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은 본체로서 하늘 영화를 누리시던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성육신(Incarnation) 하셨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동안 행하신 모든 기적들이 그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뿐만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과 하늘 위로 승천하신 사건도 그분이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는 기독교 진리를 알 수 없고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도 없다.


화요일(2월 17일)

기록된 말씀의 권위(왕하 22:10-13)


도입)

우리가 들은 복음은 사람을 통해 전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앙의 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만큼 권위를 두느냐에 달려 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이적도 없으나 그 말씀이 마지막에 그를 심판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함께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는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과거의 책이 아니다. 성경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약도와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나 주님이 땅에 계셨을 때의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현재진행형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 지금의 세대는 권위가 무너져 간다. 권위주의라는 말은 좋지 않은 뜻이지만 권위라는 말은 나쁜 것이 아니다. 성도된 우리들이 세상의 잘못된 영향력을 받아 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1. 열왕기하 22:10-13과 예레미야 36:22-31에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비교해 보십시오. 비록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사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두 가지 반응을 대표합니까?

답:

오늘날에는 이 왕처럼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우지는 않지만 여러 다른 방식으로 그 말씀을 거절할 수 있다. 그것을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책으로 거부하거나, 아무런 역사적 가치나 권위가 없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형벌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조만간 말씀을 무시한 결과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기록된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뜻, 인간 존재의 의미, 각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등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명료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즉각적인 형벌을 받지 않을지 모르나, 분명히 영원한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 있는 책으로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논쟁의 해답으로써 그리고 모든 신앙의 기초로써 제시되어야 한다.”(실물교훈, 39-40)

화잇 여사는 그녀의 일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다. 과학과 성경 사이의 논쟁에 관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적 관념으로 시험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식은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다.”(부조와 선지자, 114)

1909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총회에 참석했을 때, 마지막 설교를 마치면서 그녀는 펼쳐진 성경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이 책을 여러분께 권하는 바입니다.”(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후년의 생애, 197)


교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뜻,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엘렌 G. 화잇은 일생 동안 성경을 높였다.


부가적용)

화잇 선지의 책은 그리스도를 높인다. 이 세상에서 엘렌 화잇보다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하늘의 권위로 높인 자는 역사상 그 아무도 없다. 엘렌 화잇의 저술은 성경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과 같은 수준도 성경과 견줄 수도 없다. 성경은 그의 모든 저술들을 판단한다. 그의 저술은 성경에 종속될 뿐이다. 화잇 여사는 언제나 성경을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였으며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됨을 명백히 했다. 그녀가 받은 계시나 글들을 단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작은 빛이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모든 교리와 모든 하나님의 약속의 중심이라고 하였다. 엘렌 화잇의 영감의 가장 위대한 증거 중 하나는 그의 책을 읽는 자들에게 주는 영향이다. 1982년에 10월 미니스트리 잡지에는 엘렌 회잇의 저서를 읽는 자와 그녀의 글을 읽지 않는 자의 차이를 싣고 있다. 앤드류 대학에서도 화잇의 책을 읽는 자와 읽는 자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저들과의 현저한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책을 읽는 자들 중에 85%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매우 친숙한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57%로 무려 30%의 차이가 난다. 또한 교회와의 관계도 더 한층 충실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성경을 읽는 자가 82%, 그렇지 않은 자가 47%의 통계가 나타난다. 성경 연구에 대한 태도와 엘렌 화잇의 책을 읽고 읽지 않는 자 편에 차이가 생겨난다. 화잇 선지자의 글이 성경을 대치하지 않았다. 엘렌 화잇의 증언에는 증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백성들이 성서에 친숙하지 않음이라고 말하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의 연구로 삼아 성경의 표준과 그리스도인 완전에 도달하려는 바람을 지닌다면 증언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일(2월 18일)

선포된 말씀의 권위(히 4:12)


도입)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과 성경이 그들 삶에 우선되는 권위를 갖는 것으로 믿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충성심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가 하늘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을 확신한다. 또한 그는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마11:27)고 말씀하셨다. 또한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것"(요7:16)이며,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한다"(요 3:11)고 선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신 분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라는 그 간단한 이유 때문에 그가 가르치신 말씀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보다 개인적으로 그 말씀을 사용하신 방식이다. 예수께서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중하게 보았다는 사실은 성경이 그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그는 성경에 대해서 단지 말씀만 했던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하셨다.


1. 기록하는 재료가 부족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지 못했던 옛날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렘 38:1-4, 요 3:1-10, 6:51-66, 행 16:25-34)

답:

하나님의 말씀은 말로 선포되거나 글로 기록되거나 간에 이중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이 양날 선 검과 같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히 4:12)고 했다. 즉 의사의 손에 들린 수술용 칼처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치료를 위해 뚫고 들어가며, 영원한 사망에 이를 치명적인 질병을 밝혀낸다. 듣는 사람의 믿음이 말씀과 화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교회 내의 모든 사람이 엘렌 화잇의 선지자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권면을 들음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 예를 들면, 1863년부터 1901년까지 교회의 조직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여러 분야의 사업들이 발전함에 따라 의료 선교 협회, 안식일학교 협회, 종교자유 협회, 소책자 협회 등 다양한 협회들이 형성되어 사업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이 협회들은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했고, 대총회에 속하여 유기적으로 일하는 대신 종종 경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 세계적인 사업의 모든 주요한 결정들은 배틀크릭에 있는 대총회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내려졌다.

1901년 대총회 전날, 엘렌 G. 화잇은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서 교회 운영에 대한 과감한 변화를 촉구했다. 총회가 개최되자 일상적인 의사진행 절차를 미루어두고 교회 구조 개편을 위한 약 75명에 달하는 거대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결과로 대총회 행정위원회는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협회들은 대총회의 부서로 귀속되었으며, 연합회가 조직됨으로 현장의 지도자들은 배틀크릭의 결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면에 의해 지시된 교회의 조직 개편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약간의 수정과 증보가 있었으나 그 조직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뿐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를 지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화잇 여사를 통해 교회의 재조직을 지시하셨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그 시대에 맞는 그분의 기별을 전하셨다. 노아를 통해 세상에 임할 심판의 기별을 전하셨고, 니느웨를 위하여 요나 선지자를 부르셨고, 우상숭배에 빠진 북방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택하셨고, 남방 유다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해 1850년대에 엘렌 화잇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로 교회의 조직에 대한 기별을 주시고 그것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당시 밀러의 재림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교회 조직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로 조직하기가 힘들었으며 더구나 그들 중 대다수는 교회 조직으로부터 출교 당하는 쓰라린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재림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조직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중 몇 사람들은 교회는 조직되는 순간부터 바벨론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조직이 없는 무질서로부터 오는 많은 부작용들이 생겨났다. 화잇 부부는 교회 조직을 위해 당시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활동하였으며, 엘렌 화잇은 “교회가 조직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들은 산산히 부서져서 흩어져 버릴 것이다”(교회증언 1, 270-271)라고 권면하였다. 드디어 1863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가 조직되었다. 엘렌 화잇은 그의 예언적 안목으로 207개국, 그야말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교회를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2월 19일)

비정경 선지자들의 권위(눅 7:28)


도입)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다니엘처럼 직업적으로 예언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에 의해 예언의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사무엘처럼 전문적인 예언자도 있다. 엘리야처럼 직접 예언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성경 말씀 속에 그의 행동과 예언이 나와 있는 사람도 있다. 만일 내일 50㎝ 가량의 눈이 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고 정말 그렇게 됐다면 그것을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장래의 일을 말하고 실제로 이뤄졌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예언자=선지자=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왜냐 하면 사탄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언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 안에서 순수한 강론과 바른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가 그로 인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아모스 7장에 나와 있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대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구한 경우다. 셋째, 예언자가 도덕성을 최우선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예언은 계속되는가? 그렇다. 아모스서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사야, 아모스와 같이 정경(正經)을 기록한 선지자들 외에도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몇몇 비정경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 선지자들과 그들의 글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대상 29:29, 대하 9:29, 12:15)

답:

역대기에는 갓, 나단, 아히야, 스마야, 잇도 등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에 의해 쓰인 최소한 여섯 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2.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삼하 12:14, 왕상 11:29-39, 14:2-18, 눅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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