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예수님과 요한의 서신들(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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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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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한 저명한 과학 잡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다음과 같다. “왜 우리는 잠을 자야 하는가?”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지구의 중심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일기를 예보하는 것은 왜 어려운가?”
수백 년 간의 과학적 진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구의 중심부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모든 질문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우리는 어떻게 지구에서 살게 되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둠 속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근본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성경에 그 해답을 계시해 놓으셨다. 그리고 성경에 주어진 많은 계시들 가운데, 전도자 요한의 글들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고 있다.
이번 기에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에 관해 증언한 영감적인 복음서나 혹은 그가 기록한 계시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세 편지서들을 공부할 것이다. 이 서신들은 비록 그 당시의 특정한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보내졌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심 있는 주제들, 곧 거짓 교리, 죄, 사랑, 배교, 그리고 순종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서신들이 우리를 창조하시고(“우리는 어떻게 지구에서 살게 되었는가?”)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주시며(“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가?”) 우리를 영생으로 일으키시기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신약의 많은 서신들처럼 요한의 서신들도 분명히 주어진 이유가 있다. 이 서신들은 그 당시에 교회들이 직면했던 그리스도의 본성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쓰여졌는데, 요한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단순히 추상적인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그리스도인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제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죄와 구속에 대한 비성경적인 가르침으로 이끌게 될 것을 요한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세상과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맺도록 이끌 것이었다. 마침내 그것은 배교와 파멸로 이어질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는 요한 서신의 구절들과 주제들을 토의하는 동안,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것들을 논의할 때마다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또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요한의 세 서신들은 오늘날의 교회와 깊이 관련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서신들의 기별을 경청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궁극적으로 요한의 글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그분이 “지구의 중심부에는 무엇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하지는 않으실지라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위대하고 견고한 반석이신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들을 우리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독일 출신인 에크하르트 뮐러(Ekkehardt Mueller, Th.D., D.Min.)박사는 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 스프링에 소재한 대총회 성경연구소의 부소장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신약, 요한계시록, 성경해석학, 응용 신학이다. 그와 그의 아내 사이에는 장성한 두 자녀가 있다
대총회 안식일학교 교과 편집장 클리퍼드 골드스틴
7월 4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7분)
기억절: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일 4:14)
연구 범위: 요한 1, 2, 3서 전체를 일독하라.
학습 포인트: 요한은 왜 이 서신들을 썼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썼는가?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그러한 관심사를 그는 어떻게 표현했는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는 이 서신들로부터 어떤 약속들을 발견할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거짓 교사들이 교인들 사이에 이설을 퍼뜨린다?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이상한 견해가 퍼지고 있다? 교회 안에 권력 투쟁이 있다? 신학적 오류가 신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 신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이 필요하다? 또 어떤 이들은, 믿음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 말들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이 문제들은 2천여 년 전 요한이 신약의 세 서신들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 1:9)고 한 솔로몬의 말이 얼마나 적절한가!
하지만 요한은 문제들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면서 그분들이 누구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 교과에 인용된 예언의 신의 증언들과 재림교 성경주석의 엘렌 G. 화잇 언급 부분은 모두 영문 페이지로 표기됨.
핵심본문: 요일 1:5-7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의 희생과 중보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한다.
느끼기: 예수님 안에서 긍정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신한다.
행하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따뜻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형성해 간다.
교과 개요
I. 깨닫기: 예수님의 희생에 반응하기
A. 예수님의 희생과 중보를 봄으로써 우리는 죄를 어떻게 대하는가?
B. 그분의 희생은 우리의 도덕적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C. 그분의 희생은 우리로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하는가?
II. 느끼기: 긍정적인 태도 갖기
A. 빛이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살게 하시지만, 우리는 때때로 빛 가운데서 살지 못할 때가 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B. 빛 가운데서 사는 삶은 우리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비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대하도록 만드는가?
C. 빛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얼마나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해주는가?
III. 행하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A. 예수께서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과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B.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스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가급적 자세한 목록을 작성해 보라.
요점: 요한은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면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과 중보라는 긍정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가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올바로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따뜻하고 사랑스런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일요일(6월 28일) 발신인과 수신인은 누구인가?(요일 1:1~3)
요한은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채 그 첫 번째 서신을 시작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자(記者)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신에서는 '장로'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서신에는 수신인이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가이오(Gaius)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충분한 정보가 아니며,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가 이 서신들을 썼는지에 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1. 요한 1, 2, 3서의 공통적인 문체와 어휘는 이 서신들의 기자(記者)가 한 사람임을 가리킵니다. 이 세 서신들은 그 사람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가 사용한 용어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음 구절들을 읽어 보십시오.(요일 1:1~3, 2:1, 18, 4:4, 요이 1:1, 12, 요삼 1:1, 13~14)
요일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2:1,18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이1:1,12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요삼1:1,13,14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답: 요한 1, 2, 3서에 기자는 그 서신의 수신인들에 대해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그리고 속히 그들을 만나기 원하며 그들과 사귐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참으로 친밀한 관계로 맺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서신들의 기자는 분명히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자신이 편지하는 교인들을 “자녀들아”(little children)라는 사랑스런 호칭으로 부를 만큼 그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그가 편지하는 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체와 주제에 있어서 요한복음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교부들의 증언을 참작할 때, 우리는 이 서신들을 쓴 이가 사도 요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과 더불어 친절과 돌봄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요한은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이 주님 안에 굳게 서기를 소원하였다. 요한이 그들에게 표현한 사랑이 그의 말에 강한 힘을 실어주었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님과 그분이 교회에 주신 진리를 증거하는 모든 이들이 깨달아야 할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요한 서신의 저자인 사도 요한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신약의 편지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 저자의 신원을 밝힌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첫 번째 편지서와 요한복음 사이에는 너무나 큰 유사성이 있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두 저술의 저자가 동일인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제4복음이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으로 밝혀지는 사랑받는 제자(요 21:20-24)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그가 또한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첫 번째 편지서의 저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들을 가지게 된다. 첫 번째 편지와 두 번째 편지 사이에 그리고 두 번째 편지와 세 번째 편지 사이에는 매우 큰 유사성이 있어서 이것들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14권, 287)
<부가설명> 요한서신을 쓴 분이 사도 요한이라고 믿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발신인은 요한이 이 편지를 쓸 때 그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성도들이다.
사실 요한서신을 쓸 당시 그것을 받은 대상이 누군지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온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기자가 누구이든지 하나님이 저자이시고, 당시의 수신자가 누구였든지 상관없이 온 인류가 수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직접 보낸 편지를 읽는 마음으로 이 편지서를 연구하는 것은 합당한 태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녀가 되어야 하고 진리의 사랑을 흠뻑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교훈: 요한 1, 2, 3서의 발신인은 사도 요한이며, 수신인은 그가 사랑하고 돌보는 성도였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이들이 주님 안에 굳게 서기를 소원하였다.
월요일(6월 29일) 이 서신들의 내용은 무엇인가?(요이 1:1~13)
요한의 첫 번째 서신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도는 직선적인 방식으로 주제들을 나열하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요한의 논조를 순환적인 제시 방식이라고 정의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이 다른 관점에서 계속적으로 논의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을 읽으면서 요한의 사상의 흐름을 추적해 보십시오.
요이 1:1-3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이 1: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이 1:5~6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이 1:7~11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요이 1:12~13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13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답: 사도 요한은 이 서신의 수신자들이 진리 안에 거함을 인해 감사를 표현했고(요이 1:1-3), 또한 그들이 계명대로 순종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4절). 새 계명을 좇아 사랑하자는 권면을 한 다음(5-6절),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7-11절). 마지막으로 그는 그들과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12-13절)
요한이서에서 사도는 그 부녀(婦女, lady)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 행함을 인해 감사를 표현한다. 그는 또한 사랑과 순종에 대해 말하면서, 이미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언급했던 거짓 교사들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그는 다시 적그리스도(antichris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요한은 결론부에서 자신의 독자들을 방문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안부를 전한다.
요한삼서는 거짓 교사들에 관해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거짓 교사들에 관해 다룬 앞의 두 서신들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세 서신 모두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요한일서와 요한이서는 거짓 교사들을 주의하도록 경계한 반면에, 요한삼서는 한 가지 특별한 사례를 들어 교회 지도자들이 그 문제를 제어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적그리스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함
“말씀의 깨달음에 혼란이 있는 사람들, 적그리스도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과 동화될 시간이 없다. 다니엘과 같이 자기 운명의 시간과 장소에 서 있다. 다니엘과 요한의 예언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들은 서로를 해석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아야 할 진리들을 세상에 주고 있다. 이 예언들은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에 이 예언들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예언 자체를 설명할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9)
<부가설명> 사도가 살아 있을 때에도 적그리스도가 준동한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에 적그리스도가 준동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시대에 적그리스도는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살후 2:1-4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이다.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야말로 적그리스도들의 정점에 있는 자이다. 그 배후에는 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간계에 사로잡힌 교회가 성경이 가리키는 적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적그리스도는 재림 직전에 세상에 나타날 어떤 조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종교 소설로도 주장된다. “지상 최대의 사건 휴거”라든지 “Left Behind”라는 소설들은 바로 이런 사상을 조장하는 소설들이며 짐승의 표 666이라는 책자들도 적그리스도를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책자들이다.
이런 책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바로 계시록을 미래주의로 해석한 것이 동티이다. 이것은 반종교개혁을 위하여 트렌트 공의회 후에 계시록 해석을 부탁받은 두 사람의 예수회 신부 중에 프란시스코 리베라(1537-1591)의 계시록 해석 후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을 발전시킨 사람은 로버트 벨라민(1542-1612) 추기경이었다.
그의 이 책은 출판된 후 한 300년 동안은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였는데, 사무엘 로피 메이트랜드(1792-1866)가는 캔트베리 대주교의 사서가 되어, 도서관에서 리베라의 해석을 발견하여 매료되면서 개신교계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1826년에 이 사상을 퍼뜨리는 소책자를 발행하고 개신교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10년간 계속하였다. 그 뒤를 제임스 H. 타드-더불린 대학 히브리어 교수가 잇고,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인 존 헨리 뉴먼,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에드워드 어빙이 이었다. 이 사람은 처음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 지상 재림의 두 단계 해석을 시작하였으며, 비밀 휴거 해석을 내놨는데, 이 해석은 마가렛 맥도날드라는 스코틀랜드 소녀가 계시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 후에 존 넬슨 다비(1800-1882)가 단9:27의 한 주일을 역사의 종말 7년 대환난에 적용시키는 해석의 기초를 놓았으며, 사이릭스 잉거슨 스코필드는 스코필드 주해 성경을 발행하여 이런 사상을 세상에 널리 퍼뜨려 그것이 지금 개신교의 계시록 해석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고, 이런 사상에 입각하여 1970년대 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 할 린드세이가 “위대한 유성 지구의 마지막-The Late Great Planet Earth)”이라는 종교 소설을 써서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나타날 한 개인이라는 사상을 거인이 되게 하였으며 이제는 “뒤에 남은 자”라는 책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것들의 공통된 주장이 적그리스도가 개인이라는 것이다. 이래서 기독교계는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깊은 오류에 깊이 빠져 있다. 선지자는 지적하였다. “적그리스도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아 속임수가 난무하는 기독교계에서 진리를 옳게 분변한 사람으로 굳게 서야 할 것이다.
교훈: 요한은 그 당시에 교회 안에 퍼지고 있던 이설들, 특히 거짓 교사들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수습하기 위해 매우 강경한 어조로 그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화요일(6월 30일) 이 서신들이 기록된 목적은 무엇인가?
1. 요한은 자신의 첫 번째 서신을 기록한 이유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요일 2:12~14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죄 사함을 받은 것과, 태초부터 계신분을 알고,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며, 아버지를 알고 말씀이 속에 거하여 흉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영생이 있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 모든 진술들은 긍정적이고 확증적이다. 그러나 이 진술들은 요한일서에서 다룬 교회 내에서의 일련의 문제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서신은 거짓 교사들에 대해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요한일서에 4번, 요한이서에 1번 나타나며, 성경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적그리스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개념이 또한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요한은 분명히 이 가르침들에 대해 다룰 필요성을 느꼈으며, 단호하고도 타협할 수 없는 태도로 대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참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특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한은 거짓 교사들의 신학적인 오류와 도덕상의 결함을 드러내기 위해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연합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사랑의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논증하였다.
그는 교인들을 격려하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행동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경고하는 한편, 교회를 떠난 자들을 돌이키기를 소망했다.
요한일서와 요한삼서에는 요한이 그 편지를 쓴 이유가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이서의 목적은 요한일서에서 언급한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교인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요한삼서에 따르면, 교회 내에 권력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디오드레베(Diotrephes)는 모든 권력을 거머쥐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명백히 이설 문제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세력 기반을 확보하려고 힘쓰고 있었다.
요한이 서신들을 기록한 목적
“이단들이 교회를 괴롭히고 있었고, 거짓 교사들이 내부에서 일어나 믿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요일 2:18~19). 비록 그들이 교회를 떠나기는 했으나 그들의 영향은 아직도 잔존하여 계속적인 손상을 입히고자 위협하고 있었다. 요한은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 위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진리를 매우 매력적으로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쓰는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14권 290)
<부가설명>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안전하게 진리 안에서 성실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진리를 따라 살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사한 것을 만들어서 분별하기 어렵도록 하는 것이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어렵도록 가짜를 만들면 가장 성공하는 방해가 된다. 사단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하였다. 초기 교회에서부터 그렇게 시도했으나 교회 역사가 이어오면서 더욱 노회하여져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도 소위 전통적으로 이어온 신학적 덫에 걸려 그것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헤아리기 때문에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해 놓았다. 요한서신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서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때 보다 더 영악스럽게 교회를 파고 든 사단의 궤계와 이단의 올무를 잘 분별하여 진리를 따라 올바른 신앙을 하도록 이 서신은 우리에 다가온다.
교훈: 요한은 거짓 교사들에 의해 퍼지고 있는 신학적 오류와 도덕적인 문제,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권력 투쟁 등을 경계하기 위해 이 서신들을 썼다.
수요일(7월 1일) 요한 서신에 묘사된 예수님
1. 요한일서 전반에 걸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은 이 책의 중심에 계십니다. 이 서신에서 그분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요일 1:2, 5:20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내신 바 된 참 하나님
요일 1:3, 4:15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와 교제하시는 예수님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우리의 대언자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우리에게 비취는 참 빛이신 예수님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요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예수님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신 예수님
비록 요한일서에는 예수님보다 성부 하나님이 더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이 서신이 기록될 당시에 교인들이 안고 있던 문제는 성자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다. 교인들이나 거짓 교사들도 성부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요일 4:2)과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요일 2:22)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이 모든 문제 가운데서 요한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성부 하나님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능력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한은, “만일 너희가 예수님을 알되 그분을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구원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성경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성경의 초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엡 4:21)를 이해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우주적 쟁투에서 사단의 전략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없이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 그같이 하여 진리의 여러 중심점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제안되었다. 즉 (1)인간, (2)자연계 혹은 관측 가능한 우주, (3)성경, (4)교회 등이 그것이다. …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다른 진리의 중심점을 제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목적에 잘 부합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43~144)
<부가설명> 성경의 종교 곧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로 그 진정성이 시험되었다. 요한 당시에는 예수님을 가현(假現)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상이 교회를 강타하였다. 즉 예수님은 진짜로 육신이 되신 분이 아니고, 육신이 되신 것처럼 보였다는 사상이다. 또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사람의 육체에 접해서 활동하다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그리스도는 예수를 떠났다고 주장하였다. 요한은 이런 주장들을 단호하게 대처하여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진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배우느냐하는 것이 예수 신앙에 핵심문제로 대두되었다. 니케아 회의는 예수를 하나님의 첫 번째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유사한 분이라고 가르친 아리우스의 주장을 정죄하였다. 이것은 지금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교회 안에도 성경이 계시하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가르치지 않는 교사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여 예수님을 바르게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훈: 요한 서신에서 예수님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인간의 육체로 이 세상에 오신 사람의 아들이심이 분명히 묘사되어 있다.
목요일(7월 2일) 요한 서신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
요한 서신에는 예수님이 여러 다른 관점에서 묘사되어 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셨고(요일 1:1), 육체로 오셨으며(요일 4:2), 의롭고 순결하시며 무죄하신 분(요일 2:1, 3:3, 5)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분의 봉사와 사역에 대해서도 강조되어 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와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가 하는 문제는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분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인하는 것은 또한 구주와 주님으로서의 그분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예수님의 신인(神人)적인 속성에 의존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인적인 속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다면 구원의 계획과 죄의 문제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갖게 되고 만다. 죄를 가볍게 취급하거나 죄가 없다고 주장하게 되며(요일 1:6~10),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태도를 취하게 되면 그리스도인 행동과 윤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 요한은 예수님의 봉사와 사역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즉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지금 하고 계신 일로 인하여 우리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졌습니까?
요일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귐의 약속과 죄의 정결에 대한 약속
요일 2: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재강림에 대한 약속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실 것에 대한 약속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고 사랑을 알게 하실 것에 대한 약속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죄와 악한 자로부터 지키실 것에 대한 약속
요이 1: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실 것에 대한 약속
예수께서 구주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지금 행하고 계신 일은 우리의 반응을 촉구한다. 죄의 용서, 구원의 확신, 성령의 선물, 재림의 소망, 그분처럼 변화되어 그분을 뵙게 되리라는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따르고 순종하며,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 안에 거한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약속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다. 비록 고침을 받아야 할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께서 주신 자비를 거절할지라도, 그분의 공로를 신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멸망하도록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을 때의 우리의 속절없는 상태를 깨닫는 한편 낙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를 의지해야 한다. 가련하고 죄로 병든 절망적인 영혼이여, 바라보고 삶을 얻으라.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기로 약속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께로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증언보감, 2권, 93)
<부가설명>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부이다. 예수를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존재와 생명이 완전히 상실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주어다가 불에 사르는 것처럼 예수를 떠나는 자는 그렇게 불살라 없어진다(요15:5,6). 마치 내가 있는데, 예수의 도움을 입어 내가 무엇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활동하는 것은 내 안에 예수께서 계셔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부인하면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 되어 오신 것이다.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인가. 이 사실을 깊이 날마다 깊이 명상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로서 행하신 일과, 우리의 중보자로서 지금 행하고 계신 일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금요일(7월 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요한일서를 한 번 앉은 자리에서 일독하십시오.
“사도 요한의 시대에는 교회에 위험이 가득했었다. 사단의 기만이 도처에 있었다. …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에서 그들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른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의 관습과 의식들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믿음이 없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구원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선량한 사람이었음은 인정했지만 그분의 신성은 부인하였다. 하나님의 사업에 충성하는 척하는 어떤 이들은 기만자들이었고 그들은 행실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부인하였다.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그들은 교회에 이설(異說)들을 들여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의주의와 기만의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요한은 이 유해한 오류가 살금살금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슬픔에 가득 찼다. 그는 교회가 직면한 위험을 알고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요한의 서신들은 사랑의 정신을 나타낸다. 이 서신들은 마치 그가 사랑에 적셔진 붓으로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면서도 저희가 죄 없다고 공언하는 자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무서운 기만에 대하여 단호히 경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사도행적, 553~55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위의 인용문(사도행적, 553~554)을 숙고해 보십시오. 만약 엘렌 화잇이 오늘날의 교회를 향해 글을 썼다면 어떤 내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신학적 도전은 무엇이며, 요한에게서 배울 교훈은 무엇입니까?
* 우리교회가 당면한 신학적 도전은 하늘 성소봉사 문제에 대한 회의(懷疑)가 팽배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의 인성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 엘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별을 주신다면 아마도 요한과 비슷한 말씀을 하지 않으실까?
2. 우리 재림교회가 다른 교회들이 갖지 못한 많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 빛을 증거하는 자들의 친절과 사랑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진리를 거절한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 알고 행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을 것(눅12:47,48)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약이 아닐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예수 안에서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그 말씀이 나의 삶을 완전히 주장하는 삶이 살아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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