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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과 마태복음 10장: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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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7.24 00:39 조회수 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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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과  마태복음 10장: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8월 2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9분)


도입)

 제자(disciple)란 일반적인 의미로 pupil(학생); follower(추종자); apprentice(실습생)의 뜻을 갖고 있다. 성경적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며 배우며 행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심층적 의미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12사도를 친히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는 말씀은 제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으로 부터 들어야 하며 배워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도의 첫 걸음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며 그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하여 가르침을 받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듣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 제자의 임무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제자의 대상으로 삼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구원 받을 사람들이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제자된 우리에게로 붙여주시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있으므로 전도는 어려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찔러보고 작정되었으면 그냥 데리고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주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전도는 쉬운 것이다.


기억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연구범위: 레 25:8-54, 마 10장, 요 10:10.


중심 사상: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파송하시기 전에 몇 가지 지시사항을 주셨다. 그분의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원칙들을 배울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셔서 당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게 하는 것이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계셨다.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병을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 갈릴리 지방의 선교 여행을 떠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열두 제자들을 첫 번째 선교 여행에 내보내실 때가 이르렀음을 아셨다. 제자들은 선교사로서의 직접적인 경험을 갖게 될 것이었다.

제자들은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로부터 아주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우주를 이끄시는 원리의 산 모본을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모델을 보았던 것이다.

제자들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 14:6)과 더불어 걸으며 함께 대화하였다. 마침내 제자들이 그 동안 배운 것들을 실습할 때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보내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을 주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교여행에 내보내실 때에 주신 말씀들을 탐구할 것이다.


일요일(7월 27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10:7)


도입)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읽을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멋진 시이다. 특히 제 3연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부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는 대목이다. 천상병님의 “귀천”이라는 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이 어찌 보면 소풍과도 같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천상병 시인은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지만 1967년에 '동베를린(동백림)'사건'이라는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겪게 된다. 군사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당시에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짐작되기도 하는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천상병 시인의 이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갔던 중앙정보부에서, 그는 물고문과 전기 고문 끝에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은 순수한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렸다. 평생을 고문 후유증과 자포자기한 음주벽으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던 천상병 시인은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睦順玉)여사와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의 삶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결코 소풍처럼 즐겁고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그러진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 여러분 같으면 어떠셨을 것 같은가? 하지만 그의 인생은 군사정권에 의해 그의 삶은 완전히 일그러졌지만 그에게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하늘나라” 즉 “천국” 대한 소망이 있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셨던 설교이다. 주님께서 공생애 3년의 시간 동안 천국을 말씀하셨다. 4복음서 전부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천국은 결코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이미 천국의 삶은 시작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고난이 오고 아픔이 와도 이것은 100년도 안 되어 사라져버릴 잠시 잠깐의 소풍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그러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그러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시기에 제자들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천국의 삶을 살다가 갔다. 여러분은 이러한 천국의 삶을 살고 계신가? 혹시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해서 이 땅의 것들에 미련이 남아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우리의 생명이든지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1. 마태복음 10:7을 읽으십시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국’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답:

왕국이란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 즉 천국에는 지리적 및 영적 영역이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침례자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마 3:2). 신약은 분명히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약속된 왕으로 제시한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소망과 예언들을 성취하셔야만 했다(참조 눅 1:32-33).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적인 정치적 왕국을 세울 정치적 왕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을 기대하였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왕국은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로마가 패망할 때에 이르러 올 그런 왕국이 아니었다. 천국은 이제 임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그들을 구원과 하늘로 이끌어 줄 원칙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본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들이 실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죄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약속을 받았으며, 영생의 소망을 소유하게 되었다.


교훈: 제자들이 전파해야 했던 기별의 요지는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이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이르러온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을 일컫는 것이다.


부가적용)

마 12:28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천국이 가까이 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성령이 임재 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성령이 충만해지고 성령이 역사를 하면 성령 역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완전한 자로 준비하도록 만드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 것으로 임시만 바라보고 살던 자가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육신을 위주로 목적하며 살던 자가 영을 목적으로 천국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임재를 해야 만이 진리의 영이 이렇게 살도록 역사를 한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성령의 진리의 사상이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왔다고 하고 천국이 임하고 있다고 성경은 상징하고 있다. ‘천국이 임한다.’ 라고 하는 것은 세상살이로 염려 걱정을 가지고 살던 심령 속에 진리의 깨달음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심령에 좌정하시면 낙심하던 자가 기쁨이 되고, 매사에 짜증이 나고 부정적이던 자가 긍정적인 사람이 됨과 동시에 천국생활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천국은 앞으로 우리가 신령세계에 돌아갈 천국만 생각 하지 말라. 가정에도 천국이 있다. 심령의 천국이 있다. 교회의 천국, 사회의 천국이 있고, 이 땅에서 삶 속에, 생활 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져 가야 그것이 천국이 진정으로 임한 것이다. 세상을 추구하고 지향하던 자가 천국으로 돌이킨 자, 즉 이렇게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천국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월요일(7월 28일)

선교사를 위한 훈령(마 10장)


도입)

마 8, 9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질적인 권세를 보여 주신 주님은 마 10장에서는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셨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추수하는 일꾼'(9:38)들이다. 따라서 참된 제자도를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전도자로서 해야 할 일, 그 성취 방법, 각오, 장차 복음 전파와 함께 나타날 양상 등을 알아야 했다. 10장은 바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겪게 될 모든 가능성과 대처 방법들을 다룬 그런 내용들이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선교사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장을 자세히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16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답:


2.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나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9-10, 24절). 이 구절은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여야 할 것을 말해줍니까?

답:


3. 제자들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8절)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은 채 어떻게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전도할 수 있습니까?

답: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이 이제 만나게 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중요한 원칙들을 말씀해 주셨다.


부가적용)

예수께서 선교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는데 그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도 방법(1-5절)

1) 대상 잃어버린 자

 예수님은 전도 대상을 '이방인의 길로도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에게로'한정하신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제한이 아니다. 다만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 집중이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다.

2) 내용천국의 긴급 도래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신다. 복음 전파에는 긴박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이다(고후6:2). 때를 지나면 후회와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3) 은사

대가없이 예수님은 병고치고 귀신 내쫓는 일을,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신다. 은사는 우리의 공로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 따라서 조건을 걸고 은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 대가를 바래서도 안 된다.

4) 재정

하나님 의존 아울러 주님은 금은을 몸에 지녀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물질의 풍요한 공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6:33).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신다(왕상17:9). 그러므로 전도자는 합당한 자를 찾아 기거하고 거부하면 그곳에서 떠나면 된다. 신세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 집에 평안과 복을 빌어주어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하면 된다(왕상17:6).


2. 일사(一死)각오(16-33절)

1) 박해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 복음 전파란 양이 이리 떼 속으로 들어감과 같은 행동이다. 위험과 고난, 박해는 너무나 당연하다. 결코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벧전4:12). 우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핍박을 받았다(5:12). 예수님도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을 당하셨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집 사람들이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을 수 없다(24절). 그러나 복음 전도자는 박해를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색한 답변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모든 답변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2) 대처

현명한 도피 예수께서는 박해를 끝까지 견디라고 하시면서도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현명한 도피를 적극 권하신다. 전도자는 양같이 순하고 깨끗해야 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미련하게 고난을 다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다. 바울은 숱한 박해를 당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함과 아울러 새로운 개척지를 얻었다(행13:50,51;14:5-7). 예수님은 우리를 다른 선교지로 보내시고자 할 때 때로 박해를 사용하시기도 한다(행8:1). 박해를 못이겨 우리의 신앙이 변절되서는 안 되지만 현명한 방법으로 박해에서 벗어나는 것도 지혜이다. 모세도 도피의 경험이 있고(눅2:15), 엘리야도 경험이 있으며(왕상19:3), 심지어 아기 예수도 도피의 경험이 있다(2:13). 도피라고 다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3. 거부와 영접의 결과(34-42절)

1) 거부의 결과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주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검이 된다. 분쟁이 오고 다툼이 온다. 온화하던 가정이 불화한 가정으로 변한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은 거짓 평화를 파괴하고 드러내는 속성을 지닌다. 어디든 평화가 없는 곳에 예수의 평화를 심고야 만다. 예수님 자신이 가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요10:19).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곳마다 살의가 번득였다(요10:31,39).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으셨다.

2) 영접의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다. 따라서 제자들은 영접함은 예수님을 영접함이요 예수님을 영접함은 하나님을 영접함이다. 아울러 거기에는 상당한 상급이 약속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급을,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면 의인의 상급을 받는다. 또 하나 첨가된다.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 상도 적지는 않다. 참으로 기본적이다. 도대체 상급과 축복이 새어나갈 틈이 없다. 들어가도 나가도 떡 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는 신명기적 축복과 유사하다(신28:1-14). 하나님의 종은 본래 축복의 근원이다(창12:2). 열두 제자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도직에 임명된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전도자로서 해야 할 직무에 관해 교훈을 얻는다.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달하는 자이다. 세상에는 복음에 갈급해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고 공격적인 이들이 있다. 복음전도자는 먼저 복음에 갈급한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철저한 반대자도 만난다. 이때 그의 태도는 당당하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고난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아울러 반대자는 그 자신 자체를 뒷발질하는 어리석은 자다. 그에게 혼란과 다툼이 있을 뿐이다.


화요일(7월 29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마 10:5-6)


도입)

전도 파송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대상은 이방 세계도 사마리아도 아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도 직접 전도한 사실로 볼 때(요4:5), 이 지시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전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파송 기간이 짧은 관계로 인한 복음 전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행13:46). 그리고 지리적으로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이라는 형용사 아폴로로타(ajpolwlovta)는 '잃어버리다, 죽이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폴뤼미(ajpovllumi)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잃어버린 양은 선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 이방인에게로 가지 말고 유대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태복음 10:5-6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단 말인가? 왜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 대답은 문화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을 수행하다가 위험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엘렌 G. 화잇은 기록하기를, “만약 제자들이 먼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라면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감화를 상실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들어야 할 첫 번째 부류였던 것이다”(애드벤트 리뷰 앤드 쎄베스 헤럴드, 1892년 4월 19일자). 어쩌면 이방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엘렌 G. 화잇은 암시한다. 그러면 제자들은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실망했을 것이다(참조 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900년 7월 18일).

오늘날 우리도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관습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관습들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간과한다면 좋은 증인이 될 수 없다.


2. 요한복음 10:10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해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까?

답: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에 매우 민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제시할 더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그들의 것보다 나음을 보여주자.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유대인에게 보내셨다. 만약 이방인에게 먼저 보내셨다면 이 둘 사이에 분명히 불필요한 긴장과 분쟁이 발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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