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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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11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8분
도입)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이 아론의 자손들에게 특별히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보상이었다. 제사장이 성소와 단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서 백성으로 하여금 성소와 단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완충 지대’라 할 수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유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에게 주신 값진 선물이다. 우리의 직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통로인 것이다.
기억절: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연구범위: 민 9, 18, 19장, 벧전 2:9, 계 14:6~12.
안식일 오후
고라의 반역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 이후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역할에 관해 더 자세한 구별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각각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직무를 가지고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그 직무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주셨다. 비록 이 역할과 기능들이 오래 전에 폐지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직분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엄숙한 것이었는지 주목해 보라.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분이 무엇이든 간에 진지하게 이행할 필요가 있음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이 사람들이 상호간에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얼마나 서로 의존하고 있었는지 주목해 보라. 오늘날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를 위한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번 주 연구범위 가운데서 특히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은사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닌 은혜의 선물이었음을 주목해 보라. 그들이 이러한 직분을 가진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며, 그들 자신의 타고난 어떤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 얼마나 힘 있는 복음의 상징인가!
일요일(11월 15일)
일의 분담(출 19:5~6)
도입)
고라 자손이 반역을 일으킨 것은 아론 자손만 제사장이 된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온 회중도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했다. 물론 고라당의 반역이 진압되어 아론의 지위가 확고해 졌지만 그러나 차기 쿠데타의 음모를 감지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제사장 직을 더욱 확고히 할 필요성 때문에 지파의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도록 하셨다. 하루가 지나자 13개 지팡이 가운데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돋아 나오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온 회중이 이 광경을 눈으로 확인했고 하나님이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수여한 사실을 모두 다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고라 사건 이후에 또한 원망사건으로 모두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연속해서 저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노가 아닌 자비의 마음으로 저들에게 미리 다가가셔서 불안의 불씨를 미리 잠재우신 것이었다. 그러면서 계속적인 불씨가 될 화근 덩어리인 레위지파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및 분깃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1. 위의 말씀을 오늘날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조건적인 부르심입니까?(참조 벧전 2:9, 계 14:6~12)
답:
민수기 18:1에서 여호와께서는 예배자들에게 그들이 죽지 않을 것임을 보증해 주고자 하셨으나,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제사장 곧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제사장을 통해 성소에 접근할 때에만 그러할 것이었다. 레위인들 중에서도 특히 구별된 제사장들은, 권한이 없는 자가 성소에 접근하여 더럽히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리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성소로 나아오는 회중은 안심할 수 있었다.
2. 민수기 18:1~7을 읽으십시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뚜렷한 역할이 주어졌습니까?
답:
여기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사실은, 비록 온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지만 일반 대중으로부터 레위인들을 구별하고 레위인들로부터 아론의 가족을 구별하신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오직 특정한 사람들만이 특정한 직무를 맡았던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레위인들과 같은 세습적인 직분이 다 폐지되었지만, 우리는 신약에서 교회 내의 특별한 역할들을 발견하게 된다.(고전 12:28~31, 엡 4:11).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레위인들을 구별하셔서 성소 봉사를 하게 하셨고, 레위인들로부터 아론의 가족을 구별하시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다.
부가적용)
레위인 전체의 최고 책임자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로 지정되었다(레위기 10:1-6; 나답과 아비후 사건) 또한 이들에게는 각기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할 책임이 주어졌는데, 게르손인들에게는 모든 장막부품, 즉 삼베로 만들어진 성막과 그 덮개, 회막 문간휘장과 성막 뜰을 두르는 휘장 등이 맡겨졌으며, 고핫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광야성소의 성구들, 즉 증거궤, 상, 등잔대, 예식에 필요한 “거룩한 도구들”이 맡겨졌고, 므라리인들에게는 장막건축의 지렛대들, 즉 성막의 널빤지, 가로다지, 휘장을 받치는 기둥들, 뜰의 기둥들과 그 밑받침들, 장막을 견호히 하는 말뚝과 그 줄들이 맡겨졌다. 이러한 사역의 분담을 주를 위한 봉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은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주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신앙의 공동체는 이처럼 고유한 역할분담과 각양의 모습으로 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질서와 규모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협력하여 유기적으로 더불어 봉사 할 때만이 가장 아름답고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고전 12:12-31) 모든 레위인들은 일반적으로 성소와 거기에 따른 위험성에 대해서 책임지며, 아론족은 제사장 직분에 따르는 보다 심각한 위험성을 책임지도록 했다. 아론족들은 증거의 장막 앞에 직접 거하면서 이 일을 했으며, 제사장 직분은 아론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으며, 레위인들도 나머지 아스라엘인들 중에서 선택된 아론족을 위한 “선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여호와를 위한 헌신자들이었다.
월요일(11월 16일)
거룩한 봉사의 은사들(민 18:1~7)
도입)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 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것이 17장 마지막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18장에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대처방안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론이 그들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의 직분에 대하여 욕심을 내고,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대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죄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먼저 레위지파를 부르게 한다. 그들로 하여금 아론과 그 아들들을 수종 들게 하고 그들이 아론과 그 아들들을 돕게 될 때에, 장막의 모든 직무는 감당할 수 있지만, 결코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행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질서를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에 대하여 지은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제사장의 직분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은사로 주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욕심내거나 그 직무에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민수기 18:1~7에서 여호와의 지시하신 말씀을 읽어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 직분들을 임명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아마도 이러한 강조는 고라와 그의 동료들의 반역,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했던 반역 등과 같은 이전의 문제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왜 이들에게 이러한 직분이 주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러한 구분을 지으신 이유를 주목해 보라. 그것은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절).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그처럼 무서운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정죄하거나 파멸시키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구속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락한 죄인들을 죄의 결과인 파멸에서 구속하려는 여호와의 열망을 드러내 준다.(요 3:16~18)
1. 제사장 직분에 대한 레위인들의 관계, 아론의 가족에 대한 제사장 직분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어떤 용어가 사용되었습니까?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
답:
'선물'이라 함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온전히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 사람들에게 어떤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통해 주어진 은총이다. 결국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행할 누군가가 필요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지혜로 이 사람들을 택하신 것이다.
물론 이 거룩한 직무에는 거룩한 책임이 따른다. 성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였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육적인 것과 영적인 문제가 다 여기에 달려 있었다. 성소는 또한 예수께서 행하시는 지상 및 하늘에서의 사역의 모델이다(히 9장). 그것은 갈바리의 축소판으로서 표상과 그림자의 역할을 했다. 영혼의 운명이 저울 위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 사람들의 역할은 참으로 엄숙하였다.
교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직분은 참으로 거룩하고 엄숙한 것이었다. 이들의 역할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뿐 아니라 하늘에서의 중보사역을 잘 나타내 준다.
부가적용)
제사장의 직을 탐하므로 하나님의 성막에 함부로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 회개할 때에 바른 제사장의 직무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레위 지파를 돌리고, 또 선물을 주어서 회막의 일을 감당하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범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세운 직분에 대하여, 또 권위에 대하여 함부로 도전하고, 침해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연합을 통해 이뤄진다. ‘성막에 가까이하는 … 자마다 …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7:13)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탄원에 하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에 관해 알려 주셨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소에 관한 직무를 함께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서로 협력해야 했다. 제사장은 그 직분에 대한 죄를 담당하고(1절),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 성막의 모든 직무를 담당하지만 성소의 기구와 단에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되었다. 성소의 기구와 단은 제사장들만 가까이할 수 있었다. 이는 레위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기능적 구별을 의미했다. 능력이 아니라 부르심의 차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범죄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나아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인 제사장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구원의 길인 제사장 사역, 온 인류의 죄를 위한 곧 중보사역을 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신 분이시다.
화요일(11월 17일)
성소를 통한 생계의 지원(민 18:8~20)
도입)
죽음을 각오하고 성막을 지켜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기에 자신의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 백성들이 당연히 책임져야 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헌물을 받아 생활하게 된다. 제사장은 지극히 거룩한 제물을 먹을 수 있고 제사장 식구들은 거룩한 제물을 먹을 수 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제의적인 “위험성”을 책임진 댓가로 받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론의 자손중 성인 남자들은 제단에서 태워지는 번제를 제외한 제물을 지극히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헌납한 자연 소산물도 제사들의 가족이 제의적으로 정결하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짐승의 초태생은 제물로 바쳐진 후 남은 것을 제사장들이 취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구별하시고 그들을 위한 경제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주셨다. 그들의 직분은 분명히 전임제(full-time)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식량 구하는 일'(행 6:2)로 골몰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계는 제공되어야 했다.
1. 민수기 18:8~20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점은 무엇입니까?
답:
여러 흥미로운 개념들이 이 본문에 나온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당신께 바쳐진 제물을 어떻게 제사장들에게 주셨는지 주목해 보라. 즉 비록 제물과 헌물이 그분께 드려졌지만 그분께서는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백성은 여호와께 제물을 바침으로 동시에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 봉사하는 제사장과 하나님 사이의 밀접한 연결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는 제사장들의 생계에 관한 문제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이 특별한 직분을 가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계를 백성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백성이 제공하는 가장 좋은 기름과 음료와 곡식 등을 통하여 제사장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직분을 남용하는 대신 끊임없이 백성을 신실하게 섬겨야 한다는 그들의 의무를 상기했던 것이다.
또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것을 금전으로 속하게 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속(代贖)의 개념을 가르치신 한 가지 방법이었다. 장차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실 것이었다(참조 벧전 1:18~19). 소금이 모든 제물에 더해졌는데, 그것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불변함을 상징하였다.(참조 레 2:13)
교훈: 성소에서 전 시간 봉사자로 일하는 제사장들과 례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바쳐진 제물과 헌물을 돌리심으로 그들의 생계를 지원하셨다.
부가적용)
성막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다 보니 백성들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레위지파에서 피뢰침 역할을 하면서 성막을 거룩하게 만드는데 치중하고 백성들에게는 많은 배려를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인 성막에 대해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지켜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서도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도 바쳐지는 십일조를 가지고 생활하신 것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의 규정은 지켜질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레위지파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신경 쓰시고 저들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신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몫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신다. 모든 거제물, 요제물, 처음난 것은 제사장의 몫이라고 한다. 원래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데, 그것이 제사장의 몫이 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이 제사장의 기업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소금언약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시고 하나님의 것을 영영히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인의 허물에 대하여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기업이 없는 것으로 그들의 죄를 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에게 회막에서 섬기는 것에 대한 댓가로 백성의 십일조를 그들의 기업으로 얻게 하셨다. 그리고 회막의 일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이므로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탐하거나 취해서는 안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인의 허물을 벌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살 길, 축복의 길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셨다.
수요일(11월 18일)
십일조에 대한 계획(민 18:21~32)
도입)
하나님은 사역자들의 수고와 헌신에 대해 보상하시는 분이시다. 레위인은 제사장과 더불어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분의 종들이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십일조를 레위인의 몫으로 주셨다(21절). 백성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였고, 레위인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었다.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성소의 일과 속죄의 사역을 담당하는 레위인에게 감사해야 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레위인과 같은 사역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며, 성도들을 위해 희생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헌신에 감사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사역자들의 헌신, 희생, 성도에 대한 배려로 건강하게 세워져 가는 것이다. 레위인에게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가 보수로 주어지고 그 백성들의 십일조를 받아서 먼저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뗀 후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계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금 하셨다. 십일조를 받은 레위인들도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이것이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셨다(25, 28절).
레위 지파에게는 토지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48개의 성읍이 주어졌고, 그 중 13개는 제사장들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수 21:19, 41).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분깃이 되리라고 선언하셨다.(민 18:20)
1. 바쳐진 희생제물의 분깃 외에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어떤 세심한 계획을 세우셨습니까?(민 18:21~32)
답:
수입의 십일조를 여호와께 돌려드리는 것(레 27:30)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관습이었다. 그것이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경우이다(창 14:18~20, 히 7:1~2). 야곱은 그가 장차 얻는 것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께 돌려드리겠다고 서원했다(창 28:22).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제사장의 가족들을 포함한 레위인들을 후원하는 일에 쓰게 하셨다.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들도 십일조를 드려 아론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십일조의 가장 좋은 부분을 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으며, 그들이 받는 모든 것은 그분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자신들의 감사를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일반 백성이 항상 여호와께 의존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면 레위인들은 얼마나 더 그러했겠는가?
2. 민수기 18:32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에서 그들의 거룩한 소명에 관한 어떤 중요한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까?
답:
이 거룩한 계획에 있어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거룩한 임무를 가졌고, 백성은 신실한 십일조를 드려야만 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수고에 비하면 그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작은 것에 불과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서로가 의존하고 있었고, 그들 모두는 여호와께 의존하고 있었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해 십일조 제도를 세우심으로 그들을 후원할 뿐 아니라, 그들의 봉사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게 하셨다.
부가적용)
십일조는 하나님이 베푸신 복의 일부를 감사의 마음으로 그분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레위인은 자신이 받은 십일조 중에 십분의 일을 따로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26절). 레위인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 백성이 드린 감사의 제물은 레위인에게 돌아갔고, 레위인이 드린 감사의 제물은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헌신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복이 순환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를 통해 배려와 감사가 있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이뤄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서로 배려하고 돌아보는 사랑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우리 소득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공동체의 사랑과 감사는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길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인 제사장직이 아론에게 주어진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었으므로, 아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직 때문에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교만한 생각과 행동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 내의 여러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인정하시는 것이므로 그 어느 것도 과소평가 하거나 경히 여겨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이 맡은 어떤 직분 때문에 스스로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교만하게 행동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하나님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과 순종과 겸손이요, 그를 높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몫인 것이다.
목요일(11월 19일)
붉은 암송아지(민 19장)
도입)
정결케 하는 물은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다. 왜 붉은 암송아지가 제물로 요구되었는가? 흠이 없고 멍에를 멘 적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제사장이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린 후 불사른다. 암송아지의 재는 진 밖 정결한 곳에 보관했다가 속죄제의 재료로 사용한다. 죽음은 궁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가장 더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제물, 붉은 암송아지가 요구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끗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영을 정결케 하기 위한 처방을 제시하셨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 사건이 있은 후 수많은 사람이 매일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체로 인한 부정을 간편하게 처리하는 속죄의 길을 열어 주셨다.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가 속죄제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암송아지의 붉은색은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사람의 죄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희생 제물의 피로써 가능했다(히 9:22). 붉은 암송아지와 함께 홍색 실을 태우는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다(히 9:13~14). 우리는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에 관한 이야기는 민수기에만 기록이 되어있다. 곧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광야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에 대한 것에서 어떻게 정결함을 입을 수 있는가? 흠이 없고 멍에를 매지 아니한 송아지. 이것은 아무 결점이 없는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멍에는 사탄이 우리에게 준 죄의 멍에를 말한다. 붉은 송아지의 붉은 것은,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모습(주홍같은 우리 죄들)을 뜻한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다.
1.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드린 것은 이스라엘의 성소 제도
에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민 19장).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이 암송아지는 피 곧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흠이 없어야 했고, 결코 멍에를 멘 적이 없는 것이어야 했는데, 이는 구속 사업을 이루시기 위해 자원하여 흠 없는 희생 제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분은 모든 율법 위에 계시고 율법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우셨기 때문에 그분께는 멍에가 없으셨다.
희생될 암송아지는 죽이지 않은 채로 진 밖으로 끌려나왔다. 갈바리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히브리인들만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신 것(롬 5:12~20)을 보여 준다. 그분은 타락한 세상을 위한 구속자로 오셨다.
흰 옷을 입은 제사장은 암송아지를 잡은 후에, 그 희생제물의 몸에서 나온 피를 손에 취하고 성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렸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흠 없는 의의 보혈을 흘리신 후 죄인들을 위해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피로써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봉사를 행하신다.(참조 히 10:21~23)
암송아지는 불살라져 재가 되었는데, 그것은 온전하고 넉넉한 희생을 의미했다. 그 재는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되지 않은 정결한 사람에 의해 모아져서 진 밖의 정한 곳에 보관되었다. 이 정결케 하는 의식이 거행된 후에 그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았다. 그 정결한 사람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릇에 담긴 물을 장막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렸다. 이 의식은 죄로부터 정결케 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철저히 행해졌다.
부정한 것에 뿌려진 이 정결케 하는 물은 우리의 부정함을 씻기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반복해서 뿌려진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 성취되어야 할 사역의 철저함을 예증해 주었다.
교훈: 부정을 깨끗케 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 바쳐진 붉은 암송아지는 우리를 죄에서 정결케 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부가적용)
성숙한 신앙인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제사장은 붉은 암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는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암송아지를 잡아야 했고, 회막에 암송아지의 피를 뿌리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타는 불에 던지고, 재를 거둬 진 밖에 두는 일도 제사장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암송아지의 재는 백성을 위한 속죄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사장은 이 과정에서 부정해지기에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저녁까지 부정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제사장은 백성을 정결케 하기 위해 자신의 부정을 감수해야 했다. 제사장의 희생이 있었기에 백성은 모두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맡은 사람이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부정중의 부정인 죄의 마지막 결과인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우리를 깨끗케 하기 위해 그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우리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신 것이다.
금요일(11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십일조 제도는 아주 단순하고 공평하며 훌륭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누구든지 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함과 신뢰에 기초해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 깊은 학문이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중대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다 주의 청지기가 되어 주님의 재물을 관리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만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이를 행한다면, 각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된 회계가 될 것이며,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자금이 부족하지 않게 될 것이다.”(복음교역자, 22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오늘날 십일조와 관련된 어떤 논쟁이 있습니까? 십일조는 단지 교회의 기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치는 사람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까?
2. 붉은 암송아지(민 19장)를 통한 정결의식에서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를 이기도록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3.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십분 활용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즉 은사를 받은 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요약: 제사장 직분을 가지려는 욕망을 품었던 고라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에 명확한 구분을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고, 레위인들은 제사장 직분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 둘은 십일조 계획에 의해 부양을 받았다. 여호와께서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섞은 물을 특별한 의식적 성결을 위해 제공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죄의 얼룩으로부터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였다.
11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8분
도입)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이 아론의 자손들에게 특별히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보상이었다. 제사장이 성소와 단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서 백성으로 하여금 성소와 단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완충 지대’라 할 수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유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에게 주신 값진 선물이다. 우리의 직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통로인 것이다.
기억절: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연구범위: 민 9, 18, 19장, 벧전 2:9, 계 14:6~12.
안식일 오후
고라의 반역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 이후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역할에 관해 더 자세한 구별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각각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직무를 가지고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그 직무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주셨다. 비록 이 역할과 기능들이 오래 전에 폐지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직분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엄숙한 것이었는지 주목해 보라.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분이 무엇이든 간에 진지하게 이행할 필요가 있음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이 사람들이 상호간에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얼마나 서로 의존하고 있었는지 주목해 보라. 오늘날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를 위한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번 주 연구범위 가운데서 특히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은사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닌 은혜의 선물이었음을 주목해 보라. 그들이 이러한 직분을 가진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며, 그들 자신의 타고난 어떤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 얼마나 힘 있는 복음의 상징인가!
일요일(11월 15일)
일의 분담(출 19:5~6)
도입)
고라 자손이 반역을 일으킨 것은 아론 자손만 제사장이 된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온 회중도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했다. 물론 고라당의 반역이 진압되어 아론의 지위가 확고해 졌지만 그러나 차기 쿠데타의 음모를 감지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제사장 직을 더욱 확고히 할 필요성 때문에 지파의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도록 하셨다. 하루가 지나자 13개 지팡이 가운데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돋아 나오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온 회중이 이 광경을 눈으로 확인했고 하나님이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수여한 사실을 모두 다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고라 사건 이후에 또한 원망사건으로 모두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연속해서 저들에게 원망의 마음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노가 아닌 자비의 마음으로 저들에게 미리 다가가셔서 불안의 불씨를 미리 잠재우신 것이었다. 그러면서 계속적인 불씨가 될 화근 덩어리인 레위지파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 및 분깃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1. 위의 말씀을 오늘날 세상에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조건적인 부르심입니까?(참조 벧전 2:9, 계 14:6~12)
답:
민수기 18:1에서 여호와께서는 예배자들에게 그들이 죽지 않을 것임을 보증해 주고자 하셨으나, 오직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제사장 곧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제사장을 통해 성소에 접근할 때에만 그러할 것이었다. 레위인들 중에서도 특히 구별된 제사장들은, 권한이 없는 자가 성소에 접근하여 더럽히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리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성소로 나아오는 회중은 안심할 수 있었다.
2. 민수기 18:1~7을 읽으십시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뚜렷한 역할이 주어졌습니까?
답:
여기서 주목할 만한 중요한 사실은, 비록 온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지만 일반 대중으로부터 레위인들을 구별하고 레위인들로부터 아론의 가족을 구별하신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오직 특정한 사람들만이 특정한 직무를 맡았던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레위인들과 같은 세습적인 직분이 다 폐지되었지만, 우리는 신약에서 교회 내의 특별한 역할들을 발견하게 된다.(고전 12:28~31, 엡 4:11).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레위인들을 구별하셔서 성소 봉사를 하게 하셨고, 레위인들로부터 아론의 가족을 구별하시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다.
부가적용)
레위인 전체의 최고 책임자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로 지정되었다(레위기 10:1-6; 나답과 아비후 사건) 또한 이들에게는 각기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할 책임이 주어졌는데, 게르손인들에게는 모든 장막부품, 즉 삼베로 만들어진 성막과 그 덮개, 회막 문간휘장과 성막 뜰을 두르는 휘장 등이 맡겨졌으며, 고핫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광야성소의 성구들, 즉 증거궤, 상, 등잔대, 예식에 필요한 “거룩한 도구들”이 맡겨졌고, 므라리인들에게는 장막건축의 지렛대들, 즉 성막의 널빤지, 가로다지, 휘장을 받치는 기둥들, 뜰의 기둥들과 그 밑받침들, 장막을 견호히 하는 말뚝과 그 줄들이 맡겨졌다. 이러한 사역의 분담을 주를 위한 봉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은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주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신앙의 공동체는 이처럼 고유한 역할분담과 각양의 모습으로 봉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질서와 규모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협력하여 유기적으로 더불어 봉사 할 때만이 가장 아름답고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고전 12:12-31) 모든 레위인들은 일반적으로 성소와 거기에 따른 위험성에 대해서 책임지며, 아론족은 제사장 직분에 따르는 보다 심각한 위험성을 책임지도록 했다. 아론족들은 증거의 장막 앞에 직접 거하면서 이 일을 했으며, 제사장 직분은 아론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으며, 레위인들도 나머지 아스라엘인들 중에서 선택된 아론족을 위한 “선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여호와를 위한 헌신자들이었다.
월요일(11월 16일)
거룩한 봉사의 은사들(민 18:1~7)
도입)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 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것이 17장 마지막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대하여 본문 18장에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대처방안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론이 그들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의 직분에 대하여 욕심을 내고,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대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죄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먼저 레위지파를 부르게 한다. 그들로 하여금 아론과 그 아들들을 수종 들게 하고 그들이 아론과 그 아들들을 돕게 될 때에, 장막의 모든 직무는 감당할 수 있지만, 결코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행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질서를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에 대하여 지은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제사장의 직분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은사로 주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욕심내거나 그 직무에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민수기 18:1~7에서 여호와의 지시하신 말씀을 읽어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 직분들을 임명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아마도 이러한 강조는 고라와 그의 동료들의 반역,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했던 반역 등과 같은 이전의 문제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왜 이들에게 이러한 직분이 주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러한 구분을 지으신 이유를 주목해 보라. 그것은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었다(5절).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그처럼 무서운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본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정죄하거나 파멸시키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구속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락한 죄인들을 죄의 결과인 파멸에서 구속하려는 여호와의 열망을 드러내 준다.(요 3:16~18)
1. 제사장 직분에 대한 레위인들의 관계, 아론의 가족에 대한 제사장 직분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어떤 용어가 사용되었습니까?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
답:
'선물'이라 함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온전히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 사람들에게 어떤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통해 주어진 은총이다. 결국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행할 누군가가 필요하셨고 그분의 거룩한 지혜로 이 사람들을 택하신 것이다.
물론 이 거룩한 직무에는 거룩한 책임이 따른다. 성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처소였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육적인 것과 영적인 문제가 다 여기에 달려 있었다. 성소는 또한 예수께서 행하시는 지상 및 하늘에서의 사역의 모델이다(히 9장). 그것은 갈바리의 축소판으로서 표상과 그림자의 역할을 했다. 영혼의 운명이 저울 위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 사람들의 역할은 참으로 엄숙하였다.
교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직분은 참으로 거룩하고 엄숙한 것이었다. 이들의 역할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뿐 아니라 하늘에서의 중보사역을 잘 나타내 준다.
부가적용)
제사장의 직을 탐하므로 하나님의 성막에 함부로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 회개할 때에 바른 제사장의 직무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레위 지파를 돌리고, 또 선물을 주어서 회막의 일을 감당하게 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범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세운 직분에 대하여, 또 권위에 대하여 함부로 도전하고, 침해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연합을 통해 이뤄진다. ‘성막에 가까이하는 … 자마다 …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7:13)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탄원에 하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에 관해 알려 주셨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소에 관한 직무를 함께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서로 협력해야 했다. 제사장은 그 직분에 대한 죄를 담당하고(1절), 레위인은 제사장을 도와 성막의 모든 직무를 담당하지만 성소의 기구와 단에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되었다. 성소의 기구와 단은 제사장들만 가까이할 수 있었다. 이는 레위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기능적 구별을 의미했다. 능력이 아니라 부르심의 차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범죄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나아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인 제사장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구원의 길인 제사장 사역, 온 인류의 죄를 위한 곧 중보사역을 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신 분이시다.
화요일(11월 17일)
성소를 통한 생계의 지원(민 18:8~20)
도입)
죽음을 각오하고 성막을 지켜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기에 자신의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 백성들이 당연히 책임져야 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헌물을 받아 생활하게 된다. 제사장은 지극히 거룩한 제물을 먹을 수 있고 제사장 식구들은 거룩한 제물을 먹을 수 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제의적인 “위험성”을 책임진 댓가로 받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론의 자손중 성인 남자들은 제단에서 태워지는 번제를 제외한 제물을 지극히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헌납한 자연 소산물도 제사들의 가족이 제의적으로 정결하기만 하면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짐승의 초태생은 제물로 바쳐진 후 남은 것을 제사장들이 취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구별하시고 그들을 위한 경제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주셨다. 그들의 직분은 분명히 전임제(full-time)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식량 구하는 일'(행 6:2)로 골몰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계는 제공되어야 했다.
1. 민수기 18:8~20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점은 무엇입니까?
답:
여러 흥미로운 개념들이 이 본문에 나온다.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당신께 바쳐진 제물을 어떻게 제사장들에게 주셨는지 주목해 보라. 즉 비록 제물과 헌물이 그분께 드려졌지만 그분께서는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주셨다. 따라서 백성은 여호와께 제물을 바침으로 동시에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 봉사하는 제사장과 하나님 사이의 밀접한 연결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는 제사장들의 생계에 관한 문제도 엿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이 특별한 직분을 가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계를 백성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백성이 제공하는 가장 좋은 기름과 음료와 곡식 등을 통하여 제사장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직분을 남용하는 대신 끊임없이 백성을 신실하게 섬겨야 한다는 그들의 의무를 상기했던 것이다.
또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것을 금전으로 속하게 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속(代贖)의 개념을 가르치신 한 가지 방법이었다. 장차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실 것이었다(참조 벧전 1:18~19). 소금이 모든 제물에 더해졌는데, 그것은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불변함을 상징하였다.(참조 레 2:13)
교훈: 성소에서 전 시간 봉사자로 일하는 제사장들과 례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바쳐진 제물과 헌물을 돌리심으로 그들의 생계를 지원하셨다.
부가적용)
성막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다 보니 백성들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레위지파에서 피뢰침 역할을 하면서 성막을 거룩하게 만드는데 치중하고 백성들에게는 많은 배려를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인 성막에 대해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지켜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서도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도 바쳐지는 십일조를 가지고 생활하신 것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하나님의 규정은 지켜질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레위지파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신경 쓰시고 저들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신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몫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신다. 모든 거제물, 요제물, 처음난 것은 제사장의 몫이라고 한다. 원래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데, 그것이 제사장의 몫이 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이 제사장의 기업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소금언약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업이 되시고 하나님의 것을 영영히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인의 허물에 대하여 회막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기업이 없는 것으로 그들의 죄를 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에게 회막에서 섬기는 것에 대한 댓가로 백성의 십일조를 그들의 기업으로 얻게 하셨다. 그리고 회막의 일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직무이므로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탐하거나 취해서는 안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인의 허물을 벌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살 길, 축복의 길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셨다.
수요일(11월 18일)
십일조에 대한 계획(민 18:21~32)
도입)
하나님은 사역자들의 수고와 헌신에 대해 보상하시는 분이시다. 레위인은 제사장과 더불어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분의 종들이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십일조를 레위인의 몫으로 주셨다(21절). 백성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였고, 레위인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었다. 백성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성소의 일과 속죄의 사역을 담당하는 레위인에게 감사해야 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레위인과 같은 사역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며, 성도들을 위해 희생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헌신에 감사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사역자들의 헌신, 희생, 성도에 대한 배려로 건강하게 세워져 가는 것이다. 레위인에게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가 보수로 주어지고 그 백성들의 십일조를 받아서 먼저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뗀 후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계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금 하셨다. 십일조를 받은 레위인들도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이것이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셨다(25, 28절).
레위 지파에게는 토지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48개의 성읍이 주어졌고, 그 중 13개는 제사장들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수 21:19, 41).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분깃이 되리라고 선언하셨다.(민 18:20)
1. 바쳐진 희생제물의 분깃 외에 여호와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위해 어떤 세심한 계획을 세우셨습니까?(민 18:21~32)
답:
수입의 십일조를 여호와께 돌려드리는 것(레 27:30)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관습이었다. 그것이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경우이다(창 14:18~20, 히 7:1~2). 야곱은 그가 장차 얻는 것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께 돌려드리겠다고 서원했다(창 28:22).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제사장의 가족들을 포함한 레위인들을 후원하는 일에 쓰게 하셨다.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들도 십일조를 드려 아론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십일조의 가장 좋은 부분을 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으며, 그들이 받는 모든 것은 그분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자신들의 감사를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일반 백성이 항상 여호와께 의존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면 레위인들은 얼마나 더 그러했겠는가?
2. 민수기 18:32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에서 그들의 거룩한 소명에 관한 어떤 중요한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까?
답:
이 거룩한 계획에 있어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거룩한 임무를 가졌고, 백성은 신실한 십일조를 드려야만 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수고에 비하면 그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작은 것에 불과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서로가 의존하고 있었고, 그들 모두는 여호와께 의존하고 있었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해 십일조 제도를 세우심으로 그들을 후원할 뿐 아니라, 그들의 봉사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게 하셨다.
부가적용)
십일조는 하나님이 베푸신 복의 일부를 감사의 마음으로 그분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레위인은 자신이 받은 십일조 중에 십분의 일을 따로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26절). 레위인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 백성이 드린 감사의 제물은 레위인에게 돌아갔고, 레위인이 드린 감사의 제물은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헌신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복이 순환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일조를 통해 배려와 감사가 있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이뤄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서로 배려하고 돌아보는 사랑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우리 소득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공동체의 사랑과 감사는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길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인 제사장직이 아론에게 주어진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었으므로, 아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직 때문에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교만한 생각과 행동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 내의 여러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인정하시는 것이므로 그 어느 것도 과소평가 하거나 경히 여겨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이 맡은 어떤 직분 때문에 스스로 우월감에 사로잡히거나 교만하게 행동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하나님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과 순종과 겸손이요, 그를 높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몫인 것이다.
목요일(11월 19일)
붉은 암송아지(민 19장)
도입)
정결케 하는 물은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다. 왜 붉은 암송아지가 제물로 요구되었는가? 흠이 없고 멍에를 멘 적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제사장이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린 후 불사른다. 암송아지의 재는 진 밖 정결한 곳에 보관했다가 속죄제의 재료로 사용한다. 죽음은 궁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가장 더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제물, 붉은 암송아지가 요구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끗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영을 정결케 하기 위한 처방을 제시하셨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 사건이 있은 후 수많은 사람이 매일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체로 인한 부정을 간편하게 처리하는 속죄의 길을 열어 주셨다.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가 속죄제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암송아지의 붉은색은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사람의 죄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희생 제물의 피로써 가능했다(히 9:22). 붉은 암송아지와 함께 홍색 실을 태우는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다(히 9:13~14). 우리는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에 관한 이야기는 민수기에만 기록이 되어있다. 곧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광야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에 대한 것에서 어떻게 정결함을 입을 수 있는가? 흠이 없고 멍에를 매지 아니한 송아지. 이것은 아무 결점이 없는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멍에는 사탄이 우리에게 준 죄의 멍에를 말한다. 붉은 송아지의 붉은 것은,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모습(주홍같은 우리 죄들)을 뜻한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다.
1.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드린 것은 이스라엘의 성소 제도
에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민 19장).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답:
이 암송아지는 피 곧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흠이 없어야 했고, 결코 멍에를 멘 적이 없는 것이어야 했는데, 이는 구속 사업을 이루시기 위해 자원하여 흠 없는 희생 제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분은 모든 율법 위에 계시고 율법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우셨기 때문에 그분께는 멍에가 없으셨다.
희생될 암송아지는 죽이지 않은 채로 진 밖으로 끌려나왔다. 갈바리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히브리인들만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신 것(롬 5:12~20)을 보여 준다. 그분은 타락한 세상을 위한 구속자로 오셨다.
흰 옷을 입은 제사장은 암송아지를 잡은 후에, 그 희생제물의 몸에서 나온 피를 손에 취하고 성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렸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흠 없는 의의 보혈을 흘리신 후 죄인들을 위해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피로써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봉사를 행하신다.(참조 히 10:21~23)
암송아지는 불살라져 재가 되었는데, 그것은 온전하고 넉넉한 희생을 의미했다. 그 재는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되지 않은 정결한 사람에 의해 모아져서 진 밖의 정한 곳에 보관되었다. 이 정결케 하는 의식이 거행된 후에 그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았다. 그 정결한 사람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릇에 담긴 물을 장막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렸다. 이 의식은 죄로부터 정결케 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철저히 행해졌다.
부정한 것에 뿌려진 이 정결케 하는 물은 우리의 부정함을 씻기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반복해서 뿌려진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 성취되어야 할 사역의 철저함을 예증해 주었다.
교훈: 부정을 깨끗케 하기 위한 속죄 제물로 바쳐진 붉은 암송아지는 우리를 죄에서 정결케 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부가적용)
성숙한 신앙인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제사장은 붉은 암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는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암송아지를 잡아야 했고, 회막에 암송아지의 피를 뿌리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타는 불에 던지고, 재를 거둬 진 밖에 두는 일도 제사장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암송아지의 재는 백성을 위한 속죄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사장은 이 과정에서 부정해지기에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저녁까지 부정한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제사장은 백성을 정결케 하기 위해 자신의 부정을 감수해야 했다. 제사장의 희생이 있었기에 백성은 모두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맡은 사람이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부정중의 부정인 죄의 마지막 결과인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우리를 깨끗케 하기 위해 그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우리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신 것이다.
금요일(11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십일조 제도는 아주 단순하고 공평하며 훌륭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누구든지 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함과 신뢰에 기초해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 깊은 학문이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중대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다 주의 청지기가 되어 주님의 재물을 관리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만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이를 행한다면, 각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된 회계가 될 것이며,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자금이 부족하지 않게 될 것이다.”(복음교역자, 22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오늘날 십일조와 관련된 어떤 논쟁이 있습니까? 십일조는 단지 교회의 기능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치는 사람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까?
2. 붉은 암송아지(민 19장)를 통한 정결의식에서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를 이기도록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3.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십분 활용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즉 은사를 받은 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요약: 제사장 직분을 가지려는 욕망을 품었던 고라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에 명확한 구분을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고, 레위인들은 제사장 직분을 위한 선물이었다. 이 둘은 십일조 계획에 의해 부양을 받았다. 여호와께서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섞은 물을 특별한 의식적 성결을 위해 제공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죄의 얼룩으로부터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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