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빛 가운데 행함 : 적그리스도들을 거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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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안교 교과 공부를 애용하시는 성도 여러분께 말씀 드립니다.
제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었기에 거기에 저의 안교교과 공부를 올립니다.
십년을 한결같이 애용하신 애용자 여러분들과 또 10년을 계속 교과 공부를 올리도록 지면을 할애하신 관리자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8월 마지막 까지는 양쪽에 다 교과를 올리려고 합니다.
9월부터는 저의 안교교과 공부는 카스다에서 나가서 저의 웹사이트에 올리려고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관리자 목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간 후대하신 일에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또 애용자 여러분들에게도 양해를 구하며 지금까지 애용하신대로 계속 저의 웹사이트에서 애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웹사이트 주소는 3amsda.org 입니다. 많이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직은 완전히 정돈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열심히 정돈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명호 삼가 아룀
8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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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
연구범위: 요 15:4~10, 행 2:15~17, 히 1:1~2, 살후 2:3~4, 요일2:18~29, 4:1~6.
학습 포인트: "마지막 때"(요일 2:18)란 무엇인가? 요한은 독자들에게 어떤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가?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들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영들을 어떻게 시험해야 하는가?
안식일 오후
교회는 초창기부터 거짓 가르침과 이설들로 더불어 싸워야 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경고하기를 양떼를 공격하는 “흉악한 이리”(행 20:29)를 조심하고, 교인들을 빼앗아가는 거짓 교사들(행 20:29~30)을 경계하라고 했다. 예수님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셨다(마 24:5, 11, 24). 오늘날의 교회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예수님을 모방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주석가들은 이 짐승을 적그리스도(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다'의 의미이다)라고 불렀다. 흥미롭게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적그리스도(들)에 관해 언급하였다.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이번 주에 우리는 요한이 다루었던 문제들을 살펴보고 오늘 우리 자신을 위한 교훈을 발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핵심본문: 요일 4:1~6
<학습 목표>
깨닫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과 적그리스도를 인식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느끼기: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지해야 할 긴박한 필요성을 느낀다.
행하기: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맞서 대항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적그리스도들을 인식함
A. 성경은 모든 교리와 가르침에 대한 객관적 권위의 표준이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가?
B. 성경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성경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C.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개념을 강조한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II. 느끼기: 긴박감을 가짐
A. 적그리스도의 기만에 대처하기 위해 경성하는 마음을 배양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교만을 경계할 수 있는가?
B.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삶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에 철저히 의지할 수 있는가?
III. 행하기: 기만에 대해 경계함
A. 오늘날 편만해 있는 적그리스도의 기만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B.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 거짓 교사들과 적그리스도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점: 요한의 경고가 주어진 지 어느덧 약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적그리스도들에 의한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유일한 비결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일요일(8월 2일) ”마지막 때” (요일 2:18)
요한일서 2장의 말미에서 요한은 교인들에게 문제를 일으켰던 '무리' 혹은 '무리들'에 관해 매우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그는 '마지막 때'가 왔다고 인식하였다.
1. 요한은 1세기 말에 벌써 '마지막 때'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말한 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다음 구절들에서 '마지막 때'는 어떤 의미입니까?(행 2:15~17, 히 1:1~2, 벧전 1:20, 요일 2:18)
행2:15-17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벧전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요일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답: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때로부터 말세가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에 이르는 기간은 마지막 때 혹은 말세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시간'(the last hour)이라는 의미의 표현은 오직 여기에만 나온다. 반면에 신약의 다른 기자들은 예수께서 초림하신 때로부터의 시간을 지칭하기 위해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예수님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모든 기간은 '마지막 날들'로 간주된다. 요한의 글에서 '마지막 때'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기간을 가리키는 '마지막 날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 자신도 요한복음 4:23과 16:2에서 '시간'이라는 표현을 당신의 재림 전까지의 특정한 미래의 기간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셨다. 요한도 '마지막 때'라는 표현을 역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요한이 날짜를 정하지 않았으며,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일어나야 할 세부적인 사건들의 정확한 시간표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말하고자 했던 요지가 아니었다. 그는 부지런히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원했는데, 그 까닭은 예수께서 경고하셨듯이 거짓 교사들이 세상에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때를 위한 특별한 권면
“우리는 위험한 때의 마지막 국면에 살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오심과 관계하여 지금 기승을 부리는 불신을 미리 내다보셨다. 주님께서는 거듭해서 이 사건이 예상 밖의 사건임을 말씀하셨다. 그 큰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눅 21:35).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첫째 부류에게 사도는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어떤 이들은 신랑이 올 때 준비되어 그분과 함께 혼인 잔치로 나갈 것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귀중한 생각인가!”(교회증언, 6권, 129)
<부가설명> 성경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계시한다.(고전15:45)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지막 사람이다. 즉 종말인(終末人)이라는 말이다. 예수님 이후로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다음을 말세라고 계시한 성경의 계시는 전혀 이상한 표현이 아니다. 그때부터 인류는 말세에 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종말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인데 언제 역사적 끝이 올는지 모를지라도 개인마다 시간의 끝이 있다. 그들의 호흡이 멈추는 때이다.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는 다 이런 종말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종말보다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개인의 종말이다. 나는 그것을 인격 종말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다 인격적으로 종말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 종말인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마지막 사람이며 우리는 그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도 마지막 사람으로 살아가도 있다.
지금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 2000년 세월이 흘러서 말세지 말이 되었다. 사는 사람들이 초조하고 지루해 할까봐 하나님은 예언적 연대를 주셨고 징조들을 가르쳐주셨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다. 그래서 말세지 말인 줄 안다. 그러므로 더욱 종말인으로서 종말인답게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일에도 그래야 하고 일상생활에도 예수님이 사신 정신과 사상과 인격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정말 시간이 끝날 때가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호흡이 멈출 때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 갑자기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훈: 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말한 '마지막 때'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 기간은 이미 2천 년이 흘렀고, 그 끝에 가까이 이르렀다.
월요일(8월 3일) 적그리스도들의 출현(요일 2:18~19, 22~23)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만 나온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자리를 취하거나 그분을 대적하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여러 교단의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불법의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지칭한다. 이것은 바른 지적인데,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3:2~4에 사용된 언어는 바다에서 나온 이 짐승이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인양 행동하며, 데살로니가후서 2:4에 나오는 불법의 사람 또한 주님의 자리를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성경 여러 곳에 이러한 개념이 나타나는데, 요한은 분명히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한은 비록 요한계시록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개념을 사용하였다.
요한일서 2:18에서 요한은 적그리스도를 각각 복수(複數)와 단수(單數)로 사용하였다.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이미 나타났고, 그 특정한 적그리스도는 장차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요한은 많은 사람들을 적그리스도들로 칭하면서 하나의 특정한 적그리스도의 개념을 포기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요한일서 4:3에서 그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관하여 말했는데, 이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냈을지라도 진짜 적그리스도는 장차 올 것이었다.
1. 요한은 왜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가진 이들을 가리켜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불렀습니까?(요일 4:3, 요이 1:7)
요일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답: 그리스도의 본성을 곡해하기 위해 그릇된 이설을 퍼뜨리는 자들을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들이라 하였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요한은 예수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갖기 위해 단지 고심하고 있는 교인들이나, 거짓 가르침에 의해 순간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들을 '적그리스도'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믿는 문제나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따르든지 적그리스도의 견해를 따르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 거짓 교리를 퍼뜨리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요일 4:5), 이들이 바로 적그리스도들이었다.
적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함
“말씀의 깨달음에 혼란이 있는 사람들, 적그리스도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들이 세상과 동화될 시간이 없다. 다니엘과 같이 자기 운명의 시간과 장소에 서 있다. 다니엘과 요한의 예언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들은 서로를 해석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달아야 할 진리들을 세상에 주고 있다. 이 예언들은 세상에 증거되어야 한다. 이 마지막 때에 이 예언들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예언 자체를 설명할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9)
<부가설명>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라는 말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정신적 종교적이 사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록 이끌 것이며 결과로 자기가 경배를 받으려고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온 성경의 계시를 왜곡하는 일이 집대성될 때 완성될 것이다. 결국 성경의 계시를 왜곡하는 일을 집대성하고 그것을 자기에게 적용할 때 적그리스도는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도 성경이 계시하는 사상을 왜곡하면 적그리스도들이 된다. 우리는 어떤가?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으셔야 한다는 예수님을 말을 듣고 말렸을 때,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사단이 될 수 있다. 아니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예수님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 사단이라고 지칭되었다.
교훈: 적그리스도가 단수로 쓰일 때는 장차 나타나 그리스도를 대적할 자를 가리키지만 복수로 사용될 때는 교회를 떠나 거짓된 교리를 퍼뜨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화요일(8월 4일) 영들을 시험함(요일 4:1~6)
요한일서 4:1~6에서 요한은 이미 2:18~27에서 다루었던 주제, 곧 그들 중에 널리 유포되고 있던 그릇된 가르침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다. 거짓된 가르침을 통해 영혼의 원수가 신자들을 그토록 빨리 분열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 재림교인들은 동일한 문제 즉 우리를 분열시키는 거짓 가르침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지는 않은가?
1. 요한일서 2:19은 오늘날 우리 재림교인들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요일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답: 종종 우리는 한때 신실한 재림교인이었으나 지금은 재림교회를 맹렬히 공격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비록 우리가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전에 교인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퍼뜨리는 예수님에 관한 다양한 이설들로 인해 요한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인간으로 보였을 뿐이며(가현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침례 받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들어가셨다가 십자가 바로 전에 떠나셨다고 주장했다(가현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시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도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요한은 요한일서 4:1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릇된 견해는 적그리스도의 영의 영향을 받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2. 적그리스도와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고 중에도, 요한은 독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확신과 소망을 주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요일 2:18~27, 요일 4:1~6)
요일2:18-27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4:1-6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답: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깊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이설에 대한 최선의 방어이다.
요한일서 2:21과 요한일서 4:6 사이의 유사성을 주목해 보라. 둘 다 이러한 오류에 대한 최선의 방어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진리의 지식을 갖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은 특히 예수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른 교리의 중요성에 대한 매우 분명한 성경적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진리를 철저히 탐구할 것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부르신다. 이 시대에 적절한 귀중한 빛이 주어졌다. 그것은 우리 앞에 박두한 위기를 알려 주는 성경의 진리이다. 이 빛은 우리로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게 하고 우리가 역설하는 주장들을 가장 철저히 살피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진리의 의미와 주장들을 철저하고 꾸준하게 탐구하기를 바라신다. 신자들은 무엇이 진리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하여 추측과 분명치 않은 견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5권, 707)
<부가설명> 문제는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성경말씀을 사용하였다. 그랬다면 지금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성경말씀으로 성경말씀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고(딤후2:15) 권면한 것이다. 재림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마귀에게 하신 예수님의 대답에는 “또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이 있다. 성경으로 성경의 사상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또 기록하였으되”는 중요하다. 성경의 사상을 대적하는 사람이 “또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한다면 우리는 “또 또 또 기록하였으되”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여야 하며, 또 이치에 맞게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이 시대는 바른 말씀을 듣는 것이 어려워진 시대이다. 기도하고 겸손하게 말씀으로 말씀을 연구하여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은혜 안에 있어야 할 시대이다.
교훈: 요한은 영들을 시험하라고 하면서, 이설들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진리의 지식을 갖는 것, 특히 예수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수요일(8월 5일) 기름 부음 (요일 2:20~21, 27)
1. 많은 사람들은 요한일서 2:20에 언급된 기름 부음을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러한 결론이 합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줍니까?(삼상 16:13, 요 14:17, 15:26, 16:7, 요일 2:20~21, 27)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일2:20,21,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답: 성경에서 기름 부음과 성령의 감동을 연결시킨 구절들이 많이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구절들 중 하나이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
참된 신자들은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이 기름 부음은 그들 가운데 머물면서 그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참된 기름 부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고별 담화(요 13~16장)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말씀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이미 이사야 61:1에는 기름 부음과 성령의 사역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을 가리킨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요한일서 2:24과 27절은 유사하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요일 2:24)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일 2:27)
참된 신자들이 처음부터 들은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요일 2:14)과 진리(요이 1:2)가 그리스도인 속에 거한다. 고린도후서 1:21~22에서 거룩한 기름 부음이 성령의 인치심과 연결되어 있고, 에베소서 1:13에 따르면 진리의 말씀을 들음과 믿음은 성령의 인치심으로 이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또한 성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적그리스도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해독제는 성령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교리를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표준이다. 참된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성령님께 의지한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가르침의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신빙성과 영감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온갖 종류의 미혹과 오류에 대하여 문을 여는 것이다. 한때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성경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을 발견하고 성경의 신빙성과 영감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함으로 믿음을 저버린 이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비록 성경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나 의문을 일으킬 만한 부분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성경의 권위를 의심한다면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자들
“회의론자와 불신자들은 성경의 모든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다. 그리고 성경을 믿노라고 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다 이 점에 있어서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 저들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저희에게 계시하여 주실 때까지 인내하여 기다리기를 원치 않는다. 저들은 성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저희의 인간적 지혜로써 성경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못되는 때에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게 된다. …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곡해한 데 책임을 돌릴 것이다.”(정로의 계단, 108)
<부가설명> 성령이 임하심을 기름부음으로 말씀하신 것은 사도행전 10:38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라고 기록함으로 성령을 부어주심을 기름 붓는 것으로 나타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경을 깨닫는 것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자기의 지식과 학문과 문화적 식견 등을 다 버리고 온전히 말씀하시매 따르겠다는 자아 부정으로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럴 때 진리를 옳게 분변하는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창40:8) 인간의 교육과 신학적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성경 전체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따를 때 하나님의 해석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정로로 가도록 이끌 것이다.
교훈: 요한이 언급한 기름 부음이란 성령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것을 가리키며, 성령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믿고 따르는 것을 뜻한다.
목요일(8월 6일) 그분 안에 거함(요 5:38)
1. 다음 성경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요 5:38, 6:56, 8:31, 15:4~10, 요일 2:14, 28, 요이 1:9)
요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15:4-10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일2:14,28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이1: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답: 성경에는 주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구체적으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거하다”라는 단어는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서 그것은 중요한 개념이다. 이 단어는 요한일서에 25회, 요한이서에 2회 나타난다.
이 개념은 성자와 성부와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바른 교리와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것 또한 중요하다. 요한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거짓된 견해가 신자들의 믿음에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의 서신에서 이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다.
2. 그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들 중 하나는 영생의 약속입니다. 영생의 약속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만약 우리가 영생의 약속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무엇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참조 고전 15:1~19)
고전15:1-19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허무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었겠는가? 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감사드리자.
의심할 바 없이 요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 신앙에 중요한 측면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빛 가운데 행하기" 또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말씀과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나타났듯이 우리의 의지를 매일 그분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께 불순종하자마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성경의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예수님과의 구원하는 관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함
“가지를 무성하게 해주는 생명의 수액을 얻기 위하여 그것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는 자들도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그리스도 없이 우리는 하나의 죄도 제어하지 못하며, 가장 미약한 유혹도 이기지 못한다.”(증언보감, 1권, 514)
<부가설명> 관계라는 말은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등이 서로 관련을 맺는 것을 뜻한다. 관련이라는 것은 서로 걸려서 얽힌 사실을 뜻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은 바르게 얽혀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신학에서 이 관계 신학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 관계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과 신자 사이를 관계로 표현하기보다는 함께 거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예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가 아니라 일체의 상태를 나타낸다. 성령도 내 안에 거하여 나를 주장하시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요일4:12) 이런 표현은 관계 상태 이상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신 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된 것같이 우리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예수님이 생활하신 방법으로 사는 것 외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교훈: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 이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요,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금요일(8월 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베드로후서 2장, 엘렌 G. 화잇, 교회증언, 2권, "교회 안에 있는 세속주의"(196~197)
요한일서 2:29이 거짓 교사들에 관한 이 논의에 있어서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그릇된 가르침은 반드시 잘못된 생활 방식으로 이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의 교리 중 하나를 공격하면 다른 것에도 의문을 품게 되고, 조만간 그 영향은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 실생활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의로운 삶을 살지 않게 되며, 비참한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러한 하락의 악순환은 주님과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모본적인 삶으로 되돌아갈 때만 멈출 수 있다.
“성령은 성경을 대신하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으며, 또 주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훈과 경험을 시험하기 위한 표준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엘렌 G. 화잇, 각 시대의 대쟁투, 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오랫동안 고대해 온 우리 재림교인들에게 있어 '마지막 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마지막 때'가 거의 2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다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오늘 우리도 여전히 마지막 때에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역사적 마지막이 오기 전에 개인적 마지막이 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마지막이 아니라도 죽음으로 시간을 종결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마지막 때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적 마지막 때도 도래한 것이 확실하지 않는가.
2. 우리도 다른 이에게 적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 물론이다.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을 나타내면 그는 적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3. 교인들이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성경의 문제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성경에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믿음의 갈등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삼위일체, 조사심판, 창조 등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함께 하나님이 하시는 해석을 찾아 겸손히 성경을 연구하여 깨달음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4. 공개적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를 증거하여 소망의 이유를 분명히 들려주면서 말씀의 진리로 이끌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5.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적그리스도의 실상에 대하여 좀더 확실한 인식을 얻은 것 같다. 그래서 오직 말씀의 바른 인도를 따라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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