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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5.14 22:20 조회수 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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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안식

5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1분)


도입)

지난 수년 동안 <어드벤티스트 리뷰> 편집국에 전달된 놀라운 이야기들 가운데 젠 케네디가 그녀의 오빠 크래그에게 행한 생명의 선물보다 더 훌륭한 은혜의 예증은 없었다. 크래그는 급성 신장 부진으로 절망적인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신장을 기증받아야 했다. 젠은 오빠를 도와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만일 검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신장 하나를 떼 주어도 괜찮을까? 술과 담배에 찌든 누군가를 위해 신장을 기증한다면 남편과 딸들과 부모님은 무엇이라고 할까? 그리고 오빠는 평생 그 일을 고맙게 생각할까? 오랜 기도와 고민 끝에 젠은 신장을 기증하기로 결정하였다. 크래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자신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과, 그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분의 지배하에 있는 일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랑과 두려움과 눈물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회상한다. “오빠는 ‘내가 네게 보답하기 위해서 평생 어떻게 하면 되겠니?’ 하고 물었지요.”라고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할 일을 다 적어 놨어.” 그런 다음 그녀는 덧붙였다. “내 신장은 말이야,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않고, 매 안식일 교회에 가. 그러니 그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면 해.” 수술실에서 직원들은 젠과 크래그의 침대를 나란히 놓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그때 크래그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건 어딨어?” “어딨냐니? 뭐가?” 눈물이 크래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목록 말이야.” 이제는 눈물이 젠의 얼굴을 적셨다. “오빠, 목록은 없어. 이건 선물이야. 오빠를 사랑해. 하나님도 오빠를 사랑하셔. 그분께서 우리를 죽 지켜보실 거야.” 천 마디 말로도 크래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젠은 회상한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젠의 손을 더 힘껏 꽉 쥐는 것이었다. 그는 눈물 속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받은 후 크래그가 훌륭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가족들이 알았을 때, 더 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크래그의 몸이 젠의 신장을 거부하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는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셨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핵심본문: 막 2:27-28


학습 목표

깨닫기: 안식일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쉼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도록 이끌어 주는 날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안식일을 통하여 주어지는 기쁨을 만끽한다.

행하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한다.


교과 개요

I. 안식일을 기억함(레 23:3)

      A. 우리는 분주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쉼의 하루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어떻게 보내는가? 우리에게 쉼과 회복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상적인 안식일이란 어떤 것인가?

      B. 십계명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거룩'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II. 안식일을 누림(막 2:27)

      A.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 안에서 기뻐하는 날이며, 세상의 일상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런데 왜 이 날은 예수님과 교통하는 날이기보다는 규율에 매이는 날이 되기 쉬운가?

      B. 안식일에 합당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가운데, 안식일 준수는 율법적으로 흐르기가 아주 쉽다. 안식일에 합당한 일의 여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III. 안식일을 나눔(눅 4:16)

      A.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의 안식일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에 무엇을 하셨는가?

      B.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요점: 안식일은 다른 날들과 구별된 거룩한 날이다. 그 날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쉼을 누리도록 주어진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절: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연구범위: 창 2:2-3, 신 5:12-15, 사 58:12-14, 겔 20:12, 히 4:9-11.


중심 사상: 안식일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제정하셨는가? 거룩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혹은 무엇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는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기쁘게 지키고,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그리스도교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심장 질환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약(藥)이다. 안식일은 현대 사회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안식일은 우리의 소진된 배터리를 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추게 해 준다. 안식일은 세상의 소란과 소음으로부터 우리 가정과 마음의 문을 닫고,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분주하고 분망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명령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섬기기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이 진정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그분의 날에 안식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쉼'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존 L. 딥달, 풍요로운 삶을 위한 성경 확대경: 출애굽기, 퍼시픽 프레스, 186)


일요일(5월 17일)

분주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창 2:2-3)


도입)

안식일은 본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창 2:2를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제 칠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신다. 출 31:13을 보자.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또한, 성경은 이날을"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신 5:14 을 보자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러한 표현들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Lordship)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의 것인 안식일을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명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애굽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도적 휴식 장치인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날

“우리가 특별히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매일이 똑같으며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데 바쳐질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도래는 소망과 기쁨과 의미와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미와 말씀에 대한 연구와 명상을 통하여, 그리고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5)


지구 역사의 첫 주부터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두 가지 기본 제도는 '결혼'과 '안식일'이다. 이 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이 두 제도가 각 시대를 통하여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엿새 동안의 '평범한' 날에 '특별한' 하루를 더하여 완전한 시간의 주기(週期)를 만드셨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시간의 리듬을 존중한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왔다.


1.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왜 제 칠일에 친히 쉬셨습니까?(창 2:2-3)

답: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2-3)


2. 선지자 에스겔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였습니까? 그 용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출 20:12)

답: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그날을 안식의 날로 성별하셨다. 창조주의 모본을 따라 사람은 이 거룩한 날에 휴식할 것이었는바, 이는 그가 하늘과 땅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사업을 회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증거들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이 창조주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라도 사람에게 안식일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아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들을 더욱 충분히 묵상하고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명상할 수 있도록 칠일 중 하루 동안은 자신의 이익과 일을 제쳐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이 누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창조주의 선하신 손에서 나온 것임을 상기시켜 줌으로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안식일을 필요로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7-48)


교훈: 오늘날과 같이 분주한 삶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의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 태초에 고안하신 특별한 날이다.


부가적용)

본래 안식일은 단어 뜻 그대로를 살리자면 '쉬는 날'이다. 종종 목사님들이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면서도 안식일은 절대로 노는 날이나 쉬는 날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을 듣는다. 안식일이 적극적으로 놀이를 하는 '오락일'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쉬는 날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히브리 동사 '샤바트'는 '쉰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창조에 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3). '쉼' 때문에 생긴 날이 안식일임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이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 복 있는 날이 되게 하셨다는 말이다. 이 날은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날이 아니라 복이 넘치는 날이다. 복이 넘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히브리 동사('카다쉬')는 본래 '구별하여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특별히 구별해 놓은 날이다. 그 날에 복을 주심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함일까? 이에 대해 브루스(F. F. Bruce)의 설명 논리가 호소력이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 '휴식'을 필요로 하실까? 하나님은 엄밀한 의미에서 휴식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렇다면 안식일 제정의 목적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휴식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휴식을 위해 복을 주셔서 구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허구한 날 쉬고 놀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을 위해 복을 준 날도 아니다. 직, 간접으로 강요된 일의 부담과 압박으로 지치고 지칠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을 살인적 피곤으로부터 구원하는 합법적인 보호 장치이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 5:12-14). 기본 정신은 분명하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날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그 날로 인해 혜택을 입는 인간에게 복을 준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날이다.


월요일(5월 18일)

거룩한 시간(사 58:13)


도입)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한 두 가지를 특별히 구별을 하도록 지시하셨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허락해 주셨다. 이것은 공간을 거룩하게 구분한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곳과 달리 거룩하게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구분해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시간을 구분한 것이다. 일주일 중 다른 날과 구분해서 하나님과 영적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시간을 구분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구분된 장소에서 구분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긴 세월 하나님을 떠나있던 세상의 노예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탈바꿈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의 표현인 것이다.


성화의 표징인 안식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안식일을 따로 구별하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즉 당신의 특별한 증인들이 되도록 구별하셨다. 그들은 그 날에 그분과 교통함으로 거룩함에 이른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54)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여러 대상에게 적용되었다. 때때로 사람들이 거룩한 것으로 언급되며, 물건이나 시간도 거룩한 것으로 구분된다. '거룩'이라는 말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구별해 두다'라는  중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사장들은 오직 성소를 위해 봉사하도록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하였다. 그들은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는 쓸 수 없고 오직 특별한 의식(儀式)을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거룩한 기명(器皿)과 기구(器具)를 다루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지정하신 날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일단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면 더 이상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거룩한 날들에 행해지는 활동은 하나님께서 그 날에 부가하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했다.


1.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그날을 거룩하게 만드는 이는 누구입니까?(창 2:3, 사 58:13) 

답:  안식일을 거룩하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일컬어 '내 성일' 혹은 '여호와의 성일'이라고 하셨다.(사 58:13)


"안식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오직 그분만이 창조하실 수 있고, 거룩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이러한 까닭에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의 휴식과 예배의 날인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것을 그처럼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없이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리처드 라이스, 하나님의 통치, 앤드루스 대학교 출판사, 1997년, 403)


2. 매주 다가오는 거룩한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출 31:12-13)

답: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안식일을 순종하여 지키는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단지 규범에 따라 외적으로만 그 날을 지킨다면 참된 의미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러나 외적인 부분도 중요한데, 이는 안식일 준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날의 거룩함을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 준수는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주께 대한 충성의 표시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부가적용)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구분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날과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구분해야 할 것인가? 엿새는 세상일에 몰두하며 살았다면 이 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몰두하며 보내는 날이다. 성전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장소라면 이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구별된 시간이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땀을 흘렸다면 이 날만큼은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예배에 전념하고,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일에 몰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선한 일 행하기를 위하여 이 날을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화요일(5월 19일)

안식일의 즐거움을 경험함(신 5:12-15)


도입)

사람이 죄를 지은 후 에덴에서 쫓겨났다.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벌이 내려졌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手鼓)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에덴에서는 먹을 것이 풍족하였다. 그러므로 걱정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고(手鼓)해야 먹을 수 있다. 수고(手鼓)란 뜻이 무엇인가? 손으로 북을 친다는 뜻이다. 북은 북채로 쳐야 쉽게 소리가 난다. 손으로 북을 치면 소리도 잘 안 나고 힘이 곱절로 든다. 힘들게 일을 했는데도 수확은 에게게- 굶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나마도 수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내일은 굶지 않을까?’ 걱정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욕심’이 생겨난다. ‘벌 때 벌어야 되’‘ 일단 챙기고 봐야지’ 이렇게 되면 남의 몫도 살짝 쳐다보게 된다. 욕심이 죄를 낳는다. 그리고 죄는 사망을 초래한다. 수고(일)은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과 염려를 만들고 그 걱정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 안에 즐거움을 모조리 파괴시켜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다시 걱정 없는 즐거운 존재로 만드시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이 다시 아무 염려하지 않고 사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출애굽기 20장을 언급한다. 거기서는 천지창조가 그 계명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안식일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시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임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신명기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다른 내용이 부가되어 있다. 매 안식일은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따라서 이날은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종류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상징한다.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안식일 준수는 그들이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았으며 그분의 완전한 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나타나는 그분의 의의 산물이다. …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죄로부터 하나님의 안식에로의 구원에 대한 표징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세상과 분리시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56)


1. 신명기 5:12-15을 주의 깊이 읽고 출애굽기 20:8-11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 두 구절들은 어떻게 상호보완이 됩니까?

  

답: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상징이다. 그날은 우리를 지금 재창조하실 뿐 아니라(고후 5:17, 갈 6:15),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생의 소망을 주시는(벧후 3:13) 예수님 안에서 갖는 구원을 표상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다. 안식일은 우리가 영원토록 누릴 행복을 미리 맛보는 날이며,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특별한 소망을 상기시켜주는 날이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과 세월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노예가 되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노동 시간에서 여가 시간을 떼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현대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움직이고, 언제든지 업무로 전환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안식일은 육체적, 영적인 쉼을 갖지 못하게 하는 모든 병폐에 대한 완전한 해독제가 된다.

"거룩한 안식일을 구별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주일 중 하루 동안 생산과 업무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가 다른 날들에도 산출량에 대해 염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무익하게 바람을 쫓는 일을 그만 둠으로써 참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쉼을 누리고 기쁨을 배울 수 있게 된다."(마버 J. 돈,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 윌리엄 B. 이어드만 출판사, 1996년, 19)


교훈: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며, 구속의 축제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지킴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부가적용)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하나님의 모델적인 행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2:1-3). ‘안식’의 원리는 창조와 구속과 완성과 관련된다. 첫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천지창조기념일이다. 창조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은 개인과 단체와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념일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둘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구원기념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기념(출20:8-11)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신 구원기념일로 지키도록 명하셨다(신5:12-15). 출애굽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기념일로서의 안식일이 되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의 종노릇에서 해방된 구원 사건이야말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가 가장 크게 경축해야 할 일이다. 셋째,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는 날이다. 우리가 지금 받은 구원이 전부는 아니다.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우리의 구원은 우리 몸의 부활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또한 그 날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새롭게 되며 옛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온 우주적인 구속의 날은 곧 영원한 안식의 날이기도 하다. 매 안식일은 이러한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미리 맛보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요 구원자이며, 우리를 영원한 구원과 안식으로 이끄실 완성자라는 사실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예배의 날로 삼는 것은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종말의 완성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이다.


수요일(5월 20일)

안식일의 쉼을 세상에 본보임(사 5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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