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맨의 교과 지도 - 제 4 과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 제 4 과 나팔피구름불.doc (74.5K) 75회 다운로드
본문
제 4 과 나팔, 피, 구름, 불<?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기억절 고전 5:7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안식일 오후
제4과의 기억절이 누룩과 유월절을 말하고 있슴으로
누룩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당시의 누룩은 전에 사용하던 반죽으로부터 남겨진
약간의 발효된 반죽을 의미했고 시큼한 맛이 나는 반죽이었다.
어떤 제물이든지 주님께 봉헌되는 제물에 있어서는
누룩과 같이 드려지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었으며(출 23:18, 34:25),
소제물에 누룩을 집어넣는 것도 금지되었다.(레 2:11)
요세푸스에 따르면 진설병의 덩어리에는 누룩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유월절 절기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교병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들의 소유 또는 집에 누룩이 있는 것까지도 금지되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안에 알코올이 있어도 음주 운전으로 ticket을 주는 주들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든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음주 운전의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월절 기간 중에 무교병을 먹는 것은 유월절 사건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과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출 12:39, 신 16:3)
누룩은 반죽의 덩어리를 변조시키고 부패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발효가 부패의 과정에 대한 상징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특히 신약에서 누룩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불건전한 가르침(마 16:12)
혹은 외식(눅12:1)을 상징하였고
고린도 교회의 도덕적 방종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되었다.(고후 5:6-8, 갈 5:9)
고대 희랍인 들 중 플루타크와 로마의 풍자 문학가 페르시우스가
누룩(Fermentum)이란 단어를 도덕적 부패에 관련시켜 사용하였다.
랍비 문학에 있어서 누룩은 악한 욕망을 상징했다.
또한 그 상징은 유대교 신학에 있어서
인간 본성의 타고난 부패성을 표현하는데 널리 사용되었다.
누룩의 침투력과 발효성을 긍정적으로 사용한 예는
오직 한 가지 비유로(마 13:33, 눅 13:20-21)
하나님 나라의 은밀하고 꾸준한 성장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던 도덕적 타락과
그리스도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를 염려하였으며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묵은 누룩 – 즉, 거듭나지 못한 상태의 모든 흔적들-을 내어버리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경고하였다(고전 5:6-8).
특히 유월절 희생 곧 예수님의 죽음의 원인이 바로 누룩이라는 암시를 던지며
그의 피로 죄가 완전히 제거된 “누룩없는 자”가 그리스도인임을 가리키고 있다.
일요일 - 나를 기념하여(민 9:1-5)
유월절은 유대 달력으로 정월 14일이다.
히브리어로는 아빕월(보리, 혹은 보리이삭)이라 하고
바벨론에서는 니산월이라고 불리는 봄철이다.
(태양력으로 3,4월)
1. 민 9:1-5, 출 12:1-29 절에서 얻는 영적 진리
출 12:1-29절은 430년의 노예 생활이 끝나고
출애굽이 감행된 바로 그 숨막히는 밤이었던
“여호와의 밤”(출 12:42)과 유월절 제정을 기록하고 있다.
민 9:1-5절은 광야에서 맞은 출애굽 1주년 기념일로서
애굽에서의 특별한 구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준수가 시행됨을 보여준다.
A. 유월절의 준수는 다음과 같았다.
1) 1월 10일에 흠없고 1년된 수컷, 어린양 혹은 염소를 선택해 두어야 했다. (출 12:5)
2) 1월 14일 해질녘에 양을 잡았다.(출 12:6)
3) 우슬초 묶음으로 피를 적셔 문인방과 좌우설주에 뿌렸다.
4) 아침까지 집 밖에 나가지 말아야 했다.
5) 고난의 떡(신 16:3)인 무교병과 쓴 나물을
14일 밤부터 21일 저녁까지 7일간(출 12:8) 먹어야 했다.
6) 이를 무교절이라 했고 마지막 21일에는 성회로 모였다.
B. 유월절의 초기 형태는 분명 가족 단위로만 이루어졌고
히스기야 왕의 개혁 이후 온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 양을 잡고
다시 가족별로 유월절 만찬을 하면서 그 의미를 자녀에게 가르치면서
역사적인 해방의 기쁨과 감사를 드리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C. 특히 유월절은 구약에 언급된 세 번의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다.
첫번째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며(대하 30장),
두번째는 아빕월에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강화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다(대하 35장; 왕하 23장).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전에 유월절은
오랫동안 규정대로 지켜지지 않았거나
바르게 지켜진 적이 없었다고 성경은 평가한다(대하 35:18; 왕하 23:22).
세번째는 에스라의 종교개혁이다(스 6 장).
이처럼 유월절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주요한 역사적 종교개혁의 핵심에 위치해 있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요
1888년 미네아 폴리스 총회에서 변화의 물결의 핵심이었던 것처럼
각 개인의 신앙의 개혁과 부흥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될 수 있다.
D. 사복음서와 유월절
사복음서는 유월절에 죽임당한 어린양을
예수 그리스도로 가리킴에 주저함이 없다.
특히 요한은 1:36절에 예수님의 등장에서부터
침례 요한의 외침을 통해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께서 성전 정결하시는 장면도 유월절과 관련시키고(2:13)
오병이어의 표적도 유월절과 연관짓는다.(6:4)
요 6:51절에서 자신의 살을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기록하면서
무교절에 먹은 보리떡과 연결시킨다.
요 11:55절, 12:1절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을 가리키며
유월절의 예비일인 금요일에 재판을 받으시고
오전 6시에 빌라도 앞에 서시고
오후 3시 결국 성전에서 유월절 양잡는 때에 운명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에 문설주에 피를 발랐던 우슬초와
다리를 꺾지 않고 보존된 유월절 양의 표징이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죽으심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졌슴을 증거하고 있다.(19:29,36)
유월절 식탁에서의 고별 축도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인데
예수님은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눅 22:40)라고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마침내 이 죄악 세상을 끝내시고
영원한 천국을 이루실 그 날을 당신의 유월절로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유월절은 언제인가?
나의 출애굽은 언제인가?
재림교 성경 주석(출 12:1-14)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2. 유월절과 성만찬
유월절은 성만찬 예식으로 대체되었다.
표상과 그림자로 예시되었던 유월절 희생양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시대의 소망 652-653 페이지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주신 바 되었다. …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마음 속에 항상 새롭게 간직된다.”
[참고] 성만찬 예식이 거행된 날에 대하여
공관복음이라 일컫는 3권의 마태(마26:17), 마가(막 14:12), 누가복음(눅 22:7)은
예수님의 성만찬을 “유월절 식사”가 이루어진 유월절(혹은 통칭으로 무교절) 첫날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하였고 성만찬의 의미를 자세히 다루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유월절 전에”(요 13:1) 만찬이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유월절 전 날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세족 예식만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이 같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사이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성만찬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개인의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예식으로 초대 교회에서 인정되었다.
고전 11:23-29절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만찬 예식을 보다 은혜롭게 거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먼저 자신을 깊이 살피는 것이다.
월요일 –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민 9:1-5)
광야에서 방랑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불과 구름기둥(히, 아무드)의 현상을 통해
갈 길을 인도받았다.(출 14:24)
보통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앞서 나아가며 그 길을 인도하였다.
애굽의 군대가 홍해까지 추격했을 때는
이스라엘과 애굽인 사이로 이동하여
애굽에는 어두움을 이스라엘에는 빛을 제공하기도 하였다.(출 14:19-24)
성경 본문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것이며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려고 했슴을 암시하고 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은폐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항상 동행했던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하심을 나타내고
불기둥은 어둠 속에 감출 수 없는 빛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임재란 일시적으로 나타나심이나 방문이 아니다.
항상 함께 계심이다.
민 9:16절 “항상 그러하여”
구름 기둥이 임재의 상징이 아니라 임재의 실제였다는 말은
40년의 광야 생활 속에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부조와 선지자 282 페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자의 군기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낮에는 구름이 그들의 여정을 인도하거나 군중 위에 천개처럼 덮여 있었다. 그것은 불타는 폭염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냉기와 습기는 목이 타고 끓는 사막 에서 그들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밤에는 그것이 불기둥으로 변하여 그들의 진영을 비춰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해주었다.”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 기둥으로 영광의 광채를 감추시면서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
이른바 숨어계신 하나님이시다.
430년 전의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구름기둥 속에 숨어서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친히 함께 하셨다.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하자.
성경에서 무려 200번이나 사용된 ‘항상’이란 단어를 주님은 이렇게 사용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화요일 – 은 나팔(민 10;1-10)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두 종류의 나팔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호용 도구였던 양각 나팔(쇼파르)와
성소에 속하여 오직 제사장들만 불었던,
민 10: 8절에 나타난 두 개의 은 나팔(하초츠라)가 있었다.
여기서는 하초츠라(트럼펫)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소리를 내는 관의 길이가 60센티미터도 안되기 때문에
고음이고 날카롭게 났슴이 분명하다.
이 은 나팔들은 한 덩어리의 은을 쳐서 만든 것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작용을 하도록 악기의 끝에 부리가 부착되었다.
고고학자들은 하스모네가의 주화들에 "예루살렘의 구원"이라는 표어와 함께
두 개의 트럼펫이 새겨진 것들을 발굴해 내었다.
또한 티투스 개선문에도 거룩한 트럼펫이 그려져 있다.
이 악기는 곧은 것으로 자연스런 고음을 낼 수 있었다.
- 이전글제 5과 불평에서 배교까지 09.10.21
- 다음글한 두 개 예화(5과) 09.10.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