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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옛 고을의 양반과 양반 부인과 아들과 그 머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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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근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5.23 05:17 조회수 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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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로운 한 주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할머니들께서 옛날에....로부터 시작하여 옛 이야기를 하면 귀가 종깃하여 재미있게 들었지요.

제가 오늘 아침 옛 이야기 하나를 긴하게 하고 싶거든요.

우리나라 남단에 옛 이름으로 삼별초 라고 하는 300여호가 사는 평화스러운 작은 고을이 하나 있었습

니다. 그러니깐 지금부터 100년을 넘겼을까 말까 하는 시대의 우리 고을에서 가까운 우리나라 실화입

니다.

 

 

구 한말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심히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시에 단순 농

업국이었고 자연 양반지주들이 오늘날 기업하는 사람들처럼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리하

여 양반과 서민이라는 신분 사이에서 무리한 일과 횡포도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조금씩은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지만 춘궁기를 살아가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물론

온통 쌀밥을 해먹는 일은 양반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잡곡 밥이 고작이었고 조금 잘

산 다는 사람들은 잡곡 거기다가 쌀을 조금 넣어서 먹는 정도였습니다. 잡곡밥 마져도 사실 어디 있겠

습니까.

 

이렁 저렁 굶어가면서 그렇게 살지만 하는 수가 없으면 양반들에게 가서 한 가마니 쌀을 가져다 먹고

 다음 해엔 한 가마니 반을 다시 불려서 되갚아야 하니 생활은 계속 피폐해지고 죽을 지경이 되는 것

이 서민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생활에 짜증난 서민들은 지주 되는 양반들을 속으로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느 누구 한 사람 입을 뻥긋할 수 없었던 양반들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머슴이라

도 해야만 살아가는 유일한 길인데 그 길이 막히고 보면 식구들을 살릴 길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굴

종하다 싶이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곤핍한 시절에도 이 고을에 이상하고도 흐믓한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가

난한 이의 어느 집 앞에 쌀가마니가 놓여있지 않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지덕지 하고 신

세가 쭉 펴지는 일 아니었겠습니까. 이런 일이 잠만 자고 나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의 집 앞에는 비싼 새 갓(머리에 쓰는 모자)이 놓여있고, 또 어떤 이의 집 앞에는 무명배 한필이며,

꿀단지며, 심지어 돈꾸러미며, 미역, 솜 넣은 버선, 등이 놓여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오래 되어만 갔지만 정보화시대가 아닌 이상 그저 신기한 일이기만 했습니다.  이 짓은

부자 아니면 못할 짓이라는 정도는 알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하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서

민들은 양반들의 등살에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일들이 있고 보니 그런대로 살기가 흐믓해

졋나 봅니다.

 

그런데 세상은 변해가고 있었던 거지요. 우리나라 사방에서 양반 타도운동이 거의 일시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주로  머슴을 사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역시 이 마

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양반들의 집이 습격을 당하고 매를 때리며 심지어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대농 지주 양반집을 습격했는데 그 큰 창고 속에서 진귀한 것

들이 대량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동안 각 집에 가져다 놓았던 똑같은 종류의 쌀가마니며, 무명배, 꿀

단지, 돈꾸러미, 미역, 솜넣은 버선,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소식이 삽시간에 온 고을에 알려지자 호기심을 가진 고을민들이며 머슴들이며 할 것 없이 이 집

으로 몰려들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머슴들이 이 집 주인 식구들 앞에 부복하고는 사죄를 청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러시요! 이것들이 필요하면 다 갖어가시지요!" 할 뿐이었습니다.

마침 이때 이 고을에서 붙잡힌 남녀 양반들이 묶여서 이 어른에게로 대려와졌습니다. 그리고는 머

슴들이 말하기를 "주인, 이 양반들 모두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말하니 이 노인이 말하기를 " 나

는 우리 고을 사람 한 사람도 다치지 아니하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요! 산다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요!" 했다는 것입니다.

 

양반들은 보복하지 않기로 하고 풀려났으며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머슴들은 흥분한 마음을 갈아않히고 제 각기 주인 집으로 돌아가서 하는 일에 열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이상한 이 일이 다시 동서남북 사방에서 이 집, 저 집 여러 곳에서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일의 고문은 이 집 양반 어르신이었고 지휘자는 봉사정신과 할력이 넘치는 부인이었

으며 그 아들은 주민가 실정 탐색원이었으며 그리고 머슴 3은 행동대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

나 이것은 주인에 의하여 그렇게 말해진 바는 없으나 사람들이 심증으로 분석하여 그렇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으스륵한 정보시대이지요.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비밀로 좋은 활동을 한 것은 두 가지일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 마

져도 주인 아닌 추측으로 알려진 비밀입니다. 터놓고 이런 일을 하면 양반들에게 누가 될 것이겠고

또 사람들의 기대가 본의 아니게 늘어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을 생각해서 였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옛 날 이야기이지요. 사실 흐믓한 이런 이야기는 많이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양반등을 질타

하면 아니되겠지요. 중요한 교훈은 바로 그때도 양반 서민 가리지 아니하고 이렇게 자비한 마음을

가지고 돕고 사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는 흐뭇한 이야기입니다. 끝까지 자기들의 소행임을 밝히지

아니한 이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 이 양반 노인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삼별초 고을에서 1년에 1번씩 이들을 기념하는 제사를 드렸었던 모양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도르가가 그런 분이었겠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어느 교회에서는 허

리 굽은 노인 할머니 한 분이 교회 주변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부지런하게 어디를 다니시는데 그 손

에는 쌀 자루가, 호박이, 오이가, 배추가, 상추가, 그리고 된장, 고추장까지 들려있었습니다.

한 번은 딸이 쌀 한가마니를 사놓았는데 며칠 후에 보니 그 쌀 한가마니가 다 없어졌더라구요. 어머

니가 누구에게 가져다 드리신 것이었지요. 어머니 심리를 잘 안 그 딸은 일부러 이것 저것을 풍성하

게 많이 사다 놓는다고 말했습니다. 눈물 나도록 감동스러운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폭파시

키기 위해서 사는 사람도 이 세상에 살지만 또 이런 사람들도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너무

차겹게만 느끼시지만 마세요 네! 온기있는 이들 이 세상에 많이 있으니깐요! 제가 한번 그분의 두손

을 붙잡아 보았는데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연약하던데 그렇게 하시더라구요.

왜 그이에게 스웨덴서는 노벨평화상을 주지를 않았는지 모르겠거든요. 지금이라도 그 딸에게 그 상

을 주었으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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