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부적을 없애고, 원숭이를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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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은하야, 은총아. 이제 일어나.‘ 예배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밤, 꾹꾹 막힌 가녀린 물줄기 탓에 샤워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게다가 구멍이 숭숭 뚫린 모기장 사이로 윙윙대는 불청객 탓에 잠까지 설쳤습니다. 그래도 오지로 들어가는 사역지 근처에 이만한 숙소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하루 15,000실링, 한화로 7,000원 남짓 주면 침대 하나, 작은 책상 하나 그리고 샤워실이 딸린 방에서 잘 수 있습니다. 이 가격에 아침도 주는데요. 식빵 두 쪽, 블랙티 한 잔, 소시지 하나, 그리고 삶은 계란 하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는 꽤나 호사스러운 아침 식사지요.
선교지까지 2시간은 더 달려야 하기에 아침은 사양하고, 짐을 챙겨 숙소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아침 6시라는 것을 깜박했네요. 차 뒤로 주차된 또 다른 랜드크루져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열쇠를 끼워 맞추는 아저씨를 보니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품과 함께 “하이나 시다(Haina shida,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시동을 거는데 랜드크루져 특유의 ‘부르릉’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를 내뿜어야 하는 차는 웬일인지 시동은커녕 계속해서 헛바퀴만 돌았습니다. 그제야 잠에서 퍼뜩 깨어난 아저씨는 “사마하니, 우사이디에 쿠수쿠마 가리 히(Samahani, usaidie kusukuma gari hii, 아이쿠, 미안해서 어째요. 이 차 좀 뒤에서 밀어주세요.)”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번엔 저희가 “하이나 시다”를 외치며 은하와 은총이까지 젖먹던 힘을 다해 차를 꾸욱 꾸욱 밀었지요. 볼록하게 솟아오른 턱을 넘어 시동을 거는 동안 숙소를 지키던 경비원까지 합세해 숨죽인 응원을 보탰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흔하디 흔한 작은 소동의 끝. 바지춤을 치켜 올린 아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차에 올라탔습니다.
-랜드크루져야, 시동 걸려랴, 얍!
집에서부터 챙겨온 사과, 빵, 그리고 시리얼 바를 하나씩 꺼내 먹으며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짙은 안개에 덮인 흙집들, 총총걸음으로 녹색 바나나를 이고 가는 마마들, 쌩쌩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들… 마치 설날 아침, 고향교회를 찾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쯤 달리자 아득한 광야가 저만치 펼쳐지고, 빽빽한 가시나무 사이로 울퉁불퉁 이어진 자갈밭이 나타났습니다. 반쯤 드러낸 어깨에 원색 슈카를 걸치고, 손에는 기다린 막대기를 쥔 바라바이크 사람들이 까만 선팅지가 부착된 앞 유리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어른 키보다도 낮은 바라바이크 가옥들과 댕그랑 댕그랑 여유롭게 지나가는 소떼들. 뉘 집 소들인지 목에 걸린 방울들이 마치 핸드벨을 연주하는 듯한 신비한 소리를 자아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기데루(Gideru),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인 에쉬케쉬에서도 한참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하자베(Hadzabe), 즉, 부시맨들의 땅입니다. 이 날은 침례식이 있는 날이었기에 저희는 예배당에 모여 있던 교우들을 재촉하여 침례 장소로 향했습니다. 우물 옆 침례탕으로!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찰찰 흘러 넘치는 우물이 생겼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오아시스 옆에서 침례식을 치르는 첫 날입니다. 그동안 하자베 부족들은 물을 긷기 위해 매일같이 9시간을 걸어 다녀야만 했습니다. 물을 긷는 것은 오롯이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무웨다라라(Mwedarara)까지 다녀오는 길. 종일토록 뙤약볕이 작열하는 모래밭을 걸으며, 20리터도 넘는 물동이를 이고 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다행히 하자베 마을을 우연히 방문한 한 음중구(Mzungu, 외국인)가 기데루 마을에 우물을 파 주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채 일주일도 안되어 우물 펌프가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타는 갈증을 해소하려 사람 마냥 우물가를 찾은 소떼의 침범 때문이었지요. 우물을 곁에 두고도 매일 같이 9시간을 걸어야만 했던 속절없는 세월이었습니다.
우물 수리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지난 몇 년간, 통 기회를 갖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지난 3월 21일, 하나님의 은혜로 탄자니아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국의 NGO 단체인 서빙프렌즈(Serving Friends)의 이동선 지부장님과 함께 1차 답사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장 난 원인을 분석해 필요한 부속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로부터 3일 후, 우물 전담팀과 함께 다시 한번 기데루를 찾았고, 마침내 펌프를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물은 전반적으로 깨끗한 상태였고, 수질 검사 결과 역시, ‘식수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콸콸 흘러 넘치는 우물 곁에서 하자베 부족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캑, 톡, 킥” 혀로 탭댄스를 추는 듯한 독특한 하자베 언어로, 그들은 자신들을 굽어 살피시는 하늘 아버지를 마음껏 찬양했습니다.
-드디어 물을 고쳤습니다!
- 은하, 은총이에게도 펌프질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물 옆에 파 놓은 작은 구덩이에 깨끗한 우물물을 채우고, 11명의 귀중한 하자베 부족원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에쉬케쉬 교회당까지 가야만 침례를 받을 수 있었던 지난 날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안식일이었습니다. 무릎 높이까지 채어 놓은 물의 양이 좀 적다고 하자 마루구(Marugu) 사역자와 지켜보던 교우들은 바로 옆, 우물로 달려가 수동펌프를 연신 움직였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은하와 은총이까지 신나게 펌프를 돌려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았지요. 우물 앞 좁은 물길을 따라 적셔진 작은 밭에 이름 모를 새싹이 가득 돋아 있는 모습이 몹시 생경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듯 예뻐 보였습니다.
- 11명의 침례 결심자들이 예배시간에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 안식일 예배 시간
- 지푸라기로 엮은 하자베 가옥
그동안 기데루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마른 나뭇가지로 불을 지피고, 지푸라기를 얹어 집을 지으며, 코요테를 사냥하여 끼니를 이어가는 지구상 최후의 원시부족이 궁금한 탓이었겠지요. 이곳은 세렝게티 국립공원 방문을 마치고, 아루샤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르는 ‘원시부족체험지역’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높은 마을, 살아있는 민속촌인 셈이지요. 1년 반 전인가요. 옥수수를 심기 위해 하자베 부족과 함께 있을 때 들었던 한 음제(Mzee, 노인)의 혼잣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1년에 한 두 번씩은 꼭 하자베 지역을 방문 한다는 야생동물 학술 팀을 보며 한 말이었지요. 그날도 차에서 줄지어 내린 12명의 와중구(Wazungu, 외국인)들은 한 시간여를 있다가 다시 쌩하고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 음제가 제게 말했습니다. “1년에도 몇 번씩 저런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다녀간다우. 와서는 쓱 둘러보고 서둘러 가버리지. 자기 배만 채우고 가는 거야. 지금까지 당신들처럼 우리를 생각해 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어. 배고프다 해도 고개만 끄덕일 뿐... 당신들이 말하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이렇게 옥수수를 심어주는 걸 보면...”
음제의 말처럼 하나님의 손길은 21세기와 동떨어져 살고 있는 거친 사냥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하자베 부족들은 하나님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매주 수요일, 아카시아나무 언덕 아래 모여 마을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가져 왔는데요. 그동안 드려진 모든 기도가 완벽하게 응답되었다고 그들은 고백합니다. 가족의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에는 기적적인 회복으로 응답하셨고, 먹을 것을 달라는 기도에는 그날의 사냥감으로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개인사 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위한 기도에도 같은 응답을 받았는데요. 이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을 통해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소득을 내는 업을 달라는 기도에는 양봉(캐나다의 백미라 집사님)과 닭(한국의 광주삼육초등학교)으로 응답하셨고, 지붕이 있는 예배처를 달라는 기도에는 교회 건축(고승석 장로님과 김용식 교수님)으로 응답하셨으며, 물을 달라는 기도 역시 우물펌프 수리(최재우 집사님)로 응답된 것입니다.
- 새로 지은 기데루재림교회 모습입니다
부족 대대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던 마을의 음강가(Mganga, 주술사)도 능히 풀 수 없었던 여러 어려움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다음부터는 즉각적으로 해결되는 기적을 맛보며, 하자베 부족들 역시, 뜨거운 감사와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들은 비즈(Beads) 장식물 안에 넣곤 하던 부족 특유의 부적을 떼어 버렸고, 그동안 즐겨 먹던 원숭이, 거북이, 그리고 뱀과 같은 부정한 동물의 섭취를 과감히 끊었습니다. 6년마다 새 아내를 얻곤 하던 일부다처제 관습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고 결심했지요. 앞으로는 한 사람의 아내만 취하겠다는 의미로 곧, 부족 단체 결혼식도 거행할 예정입니다. 현재 마을 사람들과 의논 중입니다만, 지금 살고 있는 부인을 끝으로 마지막이자 영원한 결합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는 신성한 예식을 치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부족은 여전히 씨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현현은 때때로 마을 전체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기데루 마을 하자베 부족 역시, 주변 세 곳의 마을을 기점으로 삼아 생을 꾸려 나가는데요. 기데루에 양식이 떨어지거나, 사냥감의 감소로 위협이 느껴지면 옆 마을인 몽고아모노(Mongoamono)로 가서 몇 달 간 머물다 다시 기데루로 오는 식입니다. 앞서 말했듯 물을 길러 또 다른 마을인 무웨다라라(Mwedarara)까지 다녀 오는 식으로 말이지요. 지금 기데루의 하나님은 몽고아모노에도 무웨다라라에도 축복과 기적을 베푸는 전능하신 신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기데루로 와서 잠시 머물다가는 몽고아모노 사람들 역시, 우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마실을 오는 무웨다라라 사람들 역시, 잠시 마을을 들러 수요일 기도회나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며 그 능력을 맛보고 있는 것이지요.
사냥꾼, 야생 열매 수집인, 유목민. 이 지구상 마지막 원시부족인 하자베 부족에게 찾아오셔서 은혜와 복음의 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기데루 마을의 스티븐 마루구(Steven Marugu) 사역자를 지원해 주시는 권영자 사모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작년, 개척을 시작한 이래로 총 48명의 하자베 부족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인근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기데루 교회 근처에서 발견한 새둥지처럼 앞으로 새로운 영혼들이 많이 양육되길 기도해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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