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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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이중섭의 ‘벚꽃 위의 새’를 감상하다~
생명이 있는 곳엔 생존이,
생존의 야성엔 상생과 경쟁의 사투가 공존한다
비췻빛 평화 속에 만개한 벚꽃 가지엔 과부하의 새 한 마리,
불시착한 청개구리의 생존은
날카로운 눈빛의 하얀 새 부리 앞에서 흔들리는데
1954년, 폐허 위에 선
한 남자의 갈망이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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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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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寧熙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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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야성엔 상생과 경쟁의 사투가 공존한다'
모든 시는 사물을 통해 운반되어 진다는데
명화가 명시를 여가까지 배달했네요
선배님의 明智的見의 詩眼 으로 클로즈 업 해서
그림이 더욱 돋보입니다.
^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벚꽃이 낙화하는데
그는 절망가운데 죽음을 예견한 것인지, 2 년 후 1956년
사십세의 짧은 일기로, 천재 화가는 안타깝게도
무연고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열흘간 피었다가 지는 벚꽃이야 이듬 봄에 다시 피지만
한 번 피었다 지는 우리네 인생은
꽃그늘 아래서 천 만 번 울고 웃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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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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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원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의 관람객들이 뽑은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라는군요.
황소로 더 유명한 화가의 덜 알려진-
우리 근대사 중, 개인적으로 가장 비통한 세월이라 여기는
6.25 전후를 20~40대로 산 이의 안목을 잠시 빌려
그림을 보고 또 보니
화폭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한 마리의 나비가
어쩌면 화가가 빙의한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훨훨 날아, 북녘땅에서 눈물로 잠든 어머니의 가슴에 살포시 앉아 안부를 전하고는
현해탄 넘어 병들고 가난한 아내와 두 아들의 외로운 거처를
푸드덕, 푸드덕 큰 새의 몸짓으로 날면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스러질 목숨의 한풀이라도 하고 싶었을지...
가까운 이들이 낙화처럼 사라지는 일이 너무 잦아서
이곳 남가주의 일상은 침통합니다.
여기저기 가끔 던지는 석촌 시인의 혜안과 사념을
곰삭이면서, 그러나 할말은 없는 근황입니다.
감사합니다.